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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로 부활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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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로 부활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

문화콘텐츠로 부활하는 삼국유사

『삼국유사』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네버 엔딩 스토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의 자주성이 돋보이는 이야기에서부터, 고혹적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설화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지금에 와서 ‘콘텐츠의 바다’라고만 하면 무엇 할 것인가? 더 다양한 장르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원작에 대한 연구작업을 통섭하여 제2의 탄생을 이루어야 한다.

중국의 고전 『서유기』를 영국의 로얄오페라단에서 먼저 오페라로 만들어 세계를 가벼운 충격에 빠뜨렸듯이, 우리의 원천기술 같은 『삼국유사』 속 144개의 이야기들을 뺏겨서는 안 된다. 모든 콘텐츠는 ‘뺏거나, 뺏기거나’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가 가지는 콘텐츠의 힘은 이야기, 일연 스님, 그리고 현장성이라는 삼위일체에서 나온다는 것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외국의 경우, 스토리텔링이 좋은 원작은 장르를 바꿔서 무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이 변용되면서 소설이 영화화되거나, 영화가 소설화되는 경우는 지나친 상업화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반화되어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상업화가 아니라 새로운 작품의 탄생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로 탄생한 것은 고전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은 뮤지컬 <렌트>로 개작되어 미국의 토니상을 휩쓸면서 브로드웨이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또한 찰스 디킨즈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도, 샤롯데 브론테의 소설『제인 에어』도 모두 뮤지컬로 성공했다.

『삼국유사』가 지니는 가치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육당 최남선은 그 다양성을 『삼국유사』의 가치로 판단하고 “조선의 고대에 관하여 신전(神典) 될 것, 예기(禮記) 될 것, 신통지(新統志) 내지 신화 및 전설집(神話及傳說集) 될 것, 민속지(民俗志) 될 것, 사회지(社會志) 될 것, 고어휘(古語彙) 될 것, 사상사실(思想事實) 될 것, 신앙 특히 불교사(佛敎史) 재료(材料)일 것, 일사집(逸史集)일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 고대사의 최고 원천이며 백과전림(百果典林)으로 극찬한 바 있다. 오늘날에는 보다 다양한 장르화 작업을 통하여 뮤지컬, 드라마, 문학,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 무용, 게임 등등 스토리텔링이 승패를 좌우하는 콘텐츠로 변신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다”라는 E. H. 카의 말처럼 고전 텍스트는 꾸준히 재해석되는데, 국내 역사서 중 가장 빈번히 차용되는 게 바로 『삼국유사』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가장 많이 『삼국유사』를 사용했던 게 문학 영역이다. 그 선두주자는 미당 서정주와 김동리이다.

김동리는 『신라열전』을 통해 『삼국유사』에 적혀 있는 미륵랑·광덕과 엄장·수로부인·김현·왕거인 등의 일화를 소설로 재구성해 ‘신라 천년의 혼’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미당 서정주도 『신라초』를 통해 ‘신라혼의 재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신라초』에는 〈노인헌화가〉가 수록돼 있는데, 노인헌화가는 1990년대에 들어 윤대녕에 의해 다시 소설로 재구성된다. 윤대녕의 『신라의 푸른 길』은 ‘문체미학의 절정’이라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진지하게 존재론을 탐구하는 화자가 천 년 전의 불교설화와 아름답게 조우하면서 끝을 맺는 로드로망의 수작이다.

윤후명이 지난해 발표한 『삼국유사 읽는 호텔』은 『삼국유사』에 실린 수많은 일화들을 소설에 용해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수많은 설화들은 화자의 자유연상에 의해 출몰한다. 옛 가야의 신화시대와 유비쿼터스 시대의 시·공간이 혼재돼 있는 게 바로 『삼국유사 읽는 호텔』의 특징이다.

조신설화를 소설화한 것은 이광수와 김성동이다. 지난 2001년 발표된 김성동의 『꿈』은 승려 출신 작가답게 욕망에 허덕이는 중생들의 가엾은 몸부림을 관조했다는 평을 들었다. 조신설화는 영화에서도 단골 제재로 쓰인다. 고 신상옥 감독과 배창호 감독이 각각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꿈〉을 발표했는데, 신상옥 감독은 이광수의 원작에 충실했던 반면 배창호 감독은 조신설화를 복원하는 데 노력했다. 최근 신상옥감독의 오리지널 작품이 복원되어 다시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명세감독의 〈개그맨〉과 김지운감독의 〈달콤한 인생〉도 환몽설화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2004년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한 후 <타짜>, <전우치>를 만들어 능력 있는 스토리텔러로 평가받는 최동훈 감독이 '삼국유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TV드라마는 삼국유사의 여러 부분을 시각화했다는 평을 듣고 있긴 하지만, 너무 재미에 치우쳐 자의적 해석이 지나쳤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시 ‘대중적’,‘시청율’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이 문화소비자의 의식이 작품의 본래 가치를 살려낸다는 불문율을 망각한 결과가 아닐까. <주몽>,<태왕사신기>,<대조영>,<서동요>,<선덕여왕> 등 사극의 유행을 타고 안방극장을 찾아온 드라마들은 삼국유사가 그 이야기의 고향이다.

연극장르는 드라마에 비해 훨씬 진지한 작업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삼국유사 원래의 이야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할 수 있고, 그 변용도 더욱 당당하다.

<도솔가>에서 영감을 얻었다거나, <제망매가>에서 모티브를 잡았다던가, <김현감호>에서 소재를 빌려왔다거나하는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얽혀버리게 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연오랑세오녀>,<만파식적>,<처용>,<석탈해> 등의 이야기가 무대위에 올라서 신선한 충격을 주긴 했다.원래 이야기도 충실하게 재현치 못하고서 탈장르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른 창작의 태도가 아니라는 평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만파식적>(오태석 작. 연출)은 둘로 갈라져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면 소리를 내는 만파식적을,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현실에 빗댔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만파식적’의 이야기가 뚜렷이 전달되지 않고 설화와 현실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 관객에게 다소 난해하게 비치는 점이 아쉽다는 평을 얻었고, <김현감호>설화에 근원을 둔 작품, <키스미타이거>는 낮에는 호랑이로, 밤에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호녀와 순박한 김현의 이루지 못한 두사람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한국적인 코믹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관람하고 관객이 극의 전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연으로, 악가무(樂歌舞)가 있는 우리의 전통 연희양식을 적극 활용하여 노래와 춤, 집단 제의 놀이가 있는 축제극으로 그 소재를 활용한 작품도 있어 설화의 원형을 체험할 수 있다는 평도 잊을 수 없었다.

무용장르도 삼국유사는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의 이야기를 전통성으로 접근하여 발전시킨 처용무는 최근 현대무용가 손인영에게 와서는 다시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났다. 손인영의 나우(Now)무용단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펼치는 무대로 <아바타처용>을 만들고, 삼국유사 설화가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고 평가받았다. 신이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대변인으로서 태어나는 아바타 처용은 우리 자신이며 바로 나 자신의 대변자로 표현한 것이다. 개인 무용단 작업으로는 드물게 15명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60분 길이의 대작으로 가상의 공간과 연결 컨템포러리 댄스로 새롭게 해체한다. 오방의 상징으로 다섯 명의 주역 무용수를 등장시키고 이들 주역 무용수를 중심으로 기교적인 춤 이외에 깊이 있는 내밀한 움직임을 도출시켜 새로운 움직임을 창출해 낸다.

<삼국유사>는 9장으로 나누어, 144개의 주옥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정리해 담은 일연스님의 현장성이 살아있고, 그 감동을 이은 자작찬시가 군데군데 50여수나 붙어있어 이해와 감동을 북돋워준다. 비장함, 안타까움, 처연함, 아쉬움 등 총체적인 감정의 보따리가 빼곡하게 숨어있는 <삼국유사>에서 문화생산자들이 히트상품을 만들기는 그 무엇보다도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알리미 본연의 탐구정신이 부족하고, 밀려오는 다른 나라이야기에 팔려버린 사람들을 되돌려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즈음에 새로운 문화콘텐츠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출발해야 한다.

『삼국유사』를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데는 분명히 지켜져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원작의 감동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감동의 훼손은 새로 태어난 예술장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원작에 대한 가치를 낮추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작가 주도의 임의적 소재 변화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판타지와 퓨전 스토리로 꾸며서 원작의 순도를 낮춰서는 안 된다. 원작에 대한 스토리라인을 옮겨온 것 말고, 영감을 얻거나 모티브를 얻은 경우는 환영할 만하다.

순도 높은 『삼국유사』의 영롱한 재탄생을 보고 싶다.
밀도 높은 『삼국유사』의 향기를 여럿에게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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