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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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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대구의 문화콘텐츠를 생각하면 늘 먹먹하다. 팔공산 승시 재현, 부인사 초조대장경을 두고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더 심해진다.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를 가자면 중장터 삼거리를 지나는데, 중촌마을에 선 시장인 중촌장시(中村場市)란 말이 줄어 중장이 되고, 1975년 폐시가 된 후에도, 그 말이 엉터리로 전승되어, 승시(僧市)로 점잖게(?) 변해버렸다. (공주 갑사가는 길에도 중장삼거리가 있다). 그동안 기본도 열정도 없는 딜레탕트들이 그 곳을 지나다가 '옳거니, 스님들이 장을 봤대서 중장터구나!', '전국 유일', '경상도에도 있었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어느 옛 문헌에 승시, 그 두 글자가 있단 말인가. 해도 너무 했다. 문화콘텐츠는 일단 역사와 전통에 근거해야한다. 천지가 개벽을 해도 강아지가 송아지를 낳을 수는 없는 법이다.

또 하나, 내년은 고려 현종 때 초조대장경이 조성되어 천 년을 맞는 해라, 오랜 시간이 만들어 준 기회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당시 70년 이상 걸려 만들어진 대장경이 대구 부인사에서 몽고 2차 침입 때 소실되었고, 그 후, 16년간 다시 만들어져 해인사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초조대장경이 문화콘텐츠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들은 간절한데, 행보가 너무 더디다. 아니 다른 길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 나오는 부인사가 부인사(夫人寺)인지, 부인사(符仁寺)인지도 속시원히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문헌자료와 고고자료를 연구한 학자들이 비정하고 있는 봉안처의 유허지가 분명히 있음에도 시간 다퉈 드러내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이렇다면 대구시가 초조대장경의 친권을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내 핏줄을 찾으려면 당연히 DNA검사를 해봐야할 것 아닌가. 무엇이 걸림돌일까.

문화콘텐츠 생산에 있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근거 있는 주장, 충분한 준비 그리고 독창성이 필요하다. 몇몇 사람의 적당한 합의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런 비유를 들어본다. 온천 없는 온천마을은 없다. 온천마을이 되려면 온천공이 발견되어 뜨거운 물이 용천해야 한다. 미지근한 물을 다시 데우는 온천은 삼류온천이다. 또, 성묘 가는 길, 풀이 우거져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렵다고 아무데서나 술 한 잔 올리고 돌아서는가. 뼈대 있는 자손이라면서, 돌아오는 명절에도 그럴 건가. 집안에 새 식구가 들어와도 그럴 건가. 아니면, 아예 내 논 자식처럼 살 건가. '지방은 식민지'라는 쓴소리는 괜히 듣는 게 아니다. 피나는 항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 문화전쟁의 독립군이 되어야 한다. 당당하자. 어떤 전장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 말자. 그렇지만 '적(敵)은 내부에 있다'는 말이 항상 진실이 될까 두렵다.

인도대통령을 지낸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의 일갈(一喝)을 되새긴다. '조금 알면 오만해진다. 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되고, 거기서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무얼하고 있는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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