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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품은 우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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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001(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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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001(들어가는 글)

절터를 찾아서떠나는 여행입니다.
이 시간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절터를 찾아서 절을 세울 것을 제의한 사람과 지원 세력, 불상과 탑을 다듬은 석공, 절을 크게 일으킨 스님, 법당을 드나들었을 신도들을 다시 그 자리에 모신다면 어떤 말들을 하실까?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기록과 설화 같은 것을 근거로 해서 요약해 보는 시간입니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절터, 폐사지에 가 보면 바람만 쌩쌩 지나가는 허허 벌판에 외롭게 버티고 있는 주춧돌이나 축대나, 불상의 파편, 당간 지주 같은 것을 볼 때 을씨년스럽기도 하지만, 환지본처의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리 불교 교리에 맞게 구색을 갖추고, 수많은 신도들로 붐비는 사찰이라 하더라도 먼먼 훗날 언젠가는, 그곳은 절이 지어지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 본질에 맞게 각종 건물과 불.보살상들이 빈틈없이 모셔진 가람은 무한한 환희심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그렇지만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을 다 벗어버리고 환지본처로 돌아온 절터는 일반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흔히 절터가 준다는, 일반 사찰과 다른 즐거움이란 게 있는데요. 그것은 보거나 만져서 얻는 경외심이나 기쁨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느끼고 깨닫는 즐거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그것에 한정되고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에까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우주만큼이나 크고 무한정입니다. 바람, 구름, 안개, 낙엽, 새소리, 물소리, 이름 없는 들풀까지 모두 가람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야말로 텅 빈 충만을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없는 절터, 바람소리, 물소리에서 가람을 연상하고 부처님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련을 쌓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일까요? 현실적으로 그런 면은 없잖아 있을 겁니다. 보통 성지순례나 사찰 탐방은 처음은 크고 화려한 절부터 시작합니다. 그 준비도 거창하고 완벽하지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작고 초라하고 이름 없는 작은 암자를 즐겨 찾습니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면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참자유인이 되는 건데 현실적으로 우리 주위에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런 사람이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누가 쓸데없이 등산도 아닌 절터를 찾겠는가 싶지만 그런 곳에 가면 더러더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종종 일본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한국의 절터는 일본과는 또 다른 묘미와 깊이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절터가 2,000여 곳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는데 2,000여 곳이라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국가가 관리하는 비보사찰이 3,800이라는 기록이 있으니까 앞으로 더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사된 2,000여 곳 중에 600여 곳이 경상도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경상도 절터 600 곳 중에 300 곳이 경주 지방에 있고 그 중에 절반 정도가 경주 남산에 몰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 하나에 150여 곳의 절터가 있으니까 경주 남산일 일러서 노천 박물관이라 할 만 하지요. 경주 남산 절터만 둘러보는데도 몇 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또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 할지라도 전 지역을 다 답사 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답사는 선별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평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 곳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가야 하고요.

 

결국 절터 답사를 즐기기 위해서는 평소에 불교문화에 대한 소양을 충분히 쌓아서 기회가 오면 떠나야 한다는 뜻인데 절터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저의 경우는 주변의 지세부터 살펴봅니다. 지맥이 어디서 들어와서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살펴보고 금당은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지어졌을까. 그 안의 불상은 어떤 모습일까. 탑은 어느 위치에, 목탑일까, 전탑일까, 석탑일까, 절을 찾는 신도와 이들을 맞이하는 스님의 모습 등등을 상상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절터 자체가 스스로 자기 내력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만큼 친숙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절터를 찾을 때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텅 빈 곳에 가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머리까지 텅 비우고 찾아 가서는 안 됩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 하고 만져도 감촉을 못 느낍니다. 그 절터에 대한 사전 지식을 웬만큼 갖추어야 합니다. 이 시간은 바로 절터에 대한 사전 지식을 쌓는 기회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서 행복한 절 터 여행, 1700년 한국 불교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상상하는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