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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

부처님의 육성을 느끼는 아함경4-장아함경 6. 전륜성왕수행경 상세보기

부처님의 육성을 느끼는 아함경4-장아함경 6. 전륜성왕수행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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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아함경 제6권에 있는 전륜성왕수행경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던 당시 인도에는 두 가지 이상적인 인간상이 있었는데, 하나는 진리를 깨달아 모든 괴로움과 불만족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난 열반을 성취한 붓다이며, 또 하나는 진리로써 통치하여 전쟁이 없고 평화가 충만한 세계를 구현하는 세속의 절대권력자로서 전륜성왕이었습니다. 부처님과 전륜성왕은 몸에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멋진 모습(32상 80종호)을 갖추고 있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수보리야, 32상으로 여래를 보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수보리야, 32상으로 여래를 본다면 곧 전륜성왕도 여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전륜성왕과 부처님은 모두 32가지의 훌륭한 모습과 80가지의 세밀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씩 스님들이 불상을 보면서 “이 부처님은 상호가 참 좋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쓰는 상호라는 말이 32상 80종호를 줄인 말입니다.

전륜성왕이라는 말은 수레바퀴를 굴리는 성스러운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수레바퀴는 법륜으로서, 진리를 의미합니다. 전륜성왕의 왕궁 위에는 진리에 입각한 올바른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임을 상징하는 큰 하늘의 수레바퀴가 떠 있습니다. 전륜성왕이 이웃 나라를 정복하러 갈 때는 수레바퀴가 먼저 그 앞을 가고, 그러면 이웃 나라는 그 수레바퀴의 위신력에 스스로 굴복합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으며, 오직 진리에 입각한 정법이 널리 퍼져나가고, 전륜성왕에 의해 사회 제도화되어갑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많은 부족국가들이 있었고 전제군주국가가 형성되어 크고 작은 정복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민중들은 이런 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정법에 입각한 평화를 구현해 줄 전륜성왕을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전륜성왕경에서 먼저 4념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함경에 보면 4념처 수행에 관한 말씀이 아주 많은데, 부처님께서는 4념처 수행을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으로서 무척 강조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길(一乘道)이 있다. 무엇을 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라고 하는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수행이다.”

그럼 전륜성왕경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기에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여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라. 어떤 것을 ‘수행자가 마땅히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며 마땅히 자기에 귀의하고 법의 귀의하여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수행자는 안 몸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바깥 몸을 관찰하고 안팎 몸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감각과 뜻과 법의 관찰도 또한 이와 같이한다....이렇게 행하는 자는 악마도 방해하지 못해 공덕은 날로 더한다.

흔히 우리가 자등명 법등명으로 알고 있는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여,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참 나를 등불로 삼고 귀의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귀의하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분명히 다릅니다.부처님은 자기 안에 ‘참 나’라는 것이 절대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바로 제법무아의 가르침입니다. 진리 또한 진리라고 하는 어떤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있어서 거기에 귀의하라고 한다면 제법무아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법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이라고 하고, 진리를 법이라고도 하고, 모든 현상을 법이라고도 합니다.자기 자신과 일체의 현상(법)이 무상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며,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님(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을 분명히 보라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것 밖에 어떤 절대적인 것, 이를테면 절대신, 창조주, 절대이성, 나 속에 있는 신령하고 때묻지 않는 참 나, 자성, 절대적인 진리.....이런 것이 있다고 여기고, 여기에 귀의하고 의지한다면 이것은 십만팔천리 떨어진 외도의 길일 뿐, 불교는 아니게 됩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불교는 일체가 연기하여 일어난 것으로, 실체라고 할만한 자성은 없으며, 무상한 것임을 뼛속깊이 깨달음을 통해 모든 집착을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얻는 가르침입니다.

“전륜성왕의 바른 법은 어떤 것입니까? 또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야 합니까?”
왕은 아들에게 말했다. “마땅히 진리에 의해 법을 세우고 법을 갖추어 그것을 공경하고 존중하라. 법을 관찰하고 진리로써 우두머리로 삼고 바른 법을 보호하라. 또 마땅히 바른 법으로써 여인을 가르치고 또 마땅히 바른 법으로 보호해 살피라. 그리고 모든 왕자, 대신, 모든 벗, 모든 관리 및 모든 백성과 사문, 바라문을 가르쳐 그릇되지 않게 하라. 밑으로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다 마땅히 보호해 보살펴라.”
“또 너는 왕국에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수행이 맑고 참되고 공덕이 구족하며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교만을 버리고 욕을 참아 어질고 사랑하며, 또 고요히 홀로 있어 스스로 닦으며 홀로 스스로 그치고 쉬어 혼자 열반에 이르고, 또 스스로 탐욕을 버리고 남을 교화하여 탐욕을 버리게 하며 스스로 성냄을 버리고 남을 교화하여 성냄을 버리게 하며, 스스로 어리석음을 버리고 남을 교화하여 어리석지 않게 하며, 또 물듦에 있으면서 물들지 않고 악에 있으면서 악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에 있으면서 어리석지 않고 집착할만한데도 집착하지 않으며 머물만한 데도 머물지 않고 살만한 데도 살지 않으며, 또 몸의 행동은 순진하고 곧고 입의 말은 순진하고 곧으며 뜻의 생각은 순진하고 곧으며, 또 몸의 행동은 맑고 깨끗하고 입의 말은 맑고 깨끗하며 뜻의 생각은 맑고 깨끗하고 또 바른 생각은 맑고 깨끗하고 사랑과 지혜는 한량이 없으며 옷과 밥에는 만족할 줄 알고, 발우를 가지고 밥을 빌어 그로써 중생을 복되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있거든 너는 마땅히 자주자주 찾아가 언제나 물어야 한다. ‘무릇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것이 선하며 어떤 것이 악한가. 어떤 것이 범하는 것이 되고 어떤 것이 범하지 않는 것인가. 어떤 것을 친해야 하고 어떤 것은 친하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것은 지어야 하고 어떤 것은 짓지 않아야 하는가. 또 어떤 법을 베풀고 행하면 오랜 동안의 즐거움을 받겠는가’고. 너는 이렇게 물어본 뒤에는 마음으로 깊이 관찰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행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 또 나라에 외로운 이와 노인이 있거든 마땅히 물건을 주어 구제하고 가난하고 곤궁한 자가 와서 구하는 것이 있거든 부디 거절하지 말라. 또 나라에 옛 법이 있거든 너는 그것을 고치지 말라. 이런 것들이 전륜성왕의 수행해야 할 법이다. 너는 마땅히 받들어 행하라.”

사회의 약자인 여성을 정법으로 이끌고 보호하라는 것과, 외로운 이, 곤궁한 이, 노인을 잘 보살피라는 가르침은 불교가 사회에 등을 돌리는 가르침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기한다는 이치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적용하여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고자 하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인도의 아쇼카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전국에 여행자를 위한 쉼터와 의료시설, 구호시설을 세웠고, 심지어 동물까지도 함부로 죽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흔히 아함경의 가르침을 소승이라고 하여 낮게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한편 옛 법을 함부로 고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전통을 잘 계승하여야 하고, 제도를 함부로 바꾸어 혼란을 초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