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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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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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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 정심의 맥을 이어온 수행처, 벽송사

우리나라의 3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의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벽송사는 6·25 전란을 전후하여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창건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으로 미루어볼 때 신라 말이나 고려 초로 보고 있다.


절 뒤쪽에 있는 3층 석탑은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고 전하여지며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된 적도 있다. 이때 불에 타 소실된 이후 곧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계 정심의 맥을 이어 조선 불교 선맥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 등 60여명에게 선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등 벽송사는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전체 높이가 4m 정도 되는 벽송사 나무장승은 그 풍부한 표정에서 민중미학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빼어난 장승 가운데 하나이며, 순천 선암사 앞에 있었던 나무장승과 쌍벽을 이룰 만큼 조각솜씨도 뛰어나다.


현재는 벽송사 경내에 정려를 지어 보관하고 있다.
왼쪽 장승은 몸통 부분에 ‘금호장군’이라 음각돼 있고, 오른쪽 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 음각돼 있다. 두 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사찰 입구에 세워져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근에 있는 서암은 벽송사에 딸린 암자이다. 원응 주지스님이 1989년 이곳으로 옮겨온 뒤 화엄경 금니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 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과 극락전(極樂殿), 광명운대(光明雲臺), 사자굴 등을 조각하고 만들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대방광문은 부처님의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뜻을 담은 문이며 극락전은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되어 있으니 부처님의 이상세계인 극락세계모습을 상징한다.
광명운대는 구름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란 뜻이고 사자굴은 스님들의 수행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