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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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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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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도량 천년고찰 임휴사
호국도량인 임휴사(臨休寺)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의 대덕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일찍이 신라말엽인 서기921년(경명왕5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불법을 수행하여 크게 선풍을 진작하고 귀국한 영조대사(靈照大師 : 870-947)가 창건하신 이래 서기 1811년(조선 순조11년)에 무주선사(無住禪師)가 중창하였으며 1930년에 포산화상(苞山和尙)께서 3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휴사(臨休寺)라는 사명(寺名)은 후삼국시대에 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던 팔공산 지역에서 고려를 세운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일대 격전을 치른 곳으로 동수대전(棟藪大戰)의 발생에서 찾을 수 있다.

서기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범해 오자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이 신라를 돕고자 경주로 가던 중 동수(동화사 인근지역)에서 견훤을 만나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왕건은 크게 패하여 생명조차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왕건의 심복인 김락의 호위를 받은 신숭겸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으로 위장하고 달아나자 견훤이 이를 진짜 왕건으로 보고 쫓아가는 중 실제 왕건은 군졸로 변장하여 무사히 난을 모면하였다.

왕건은 그 뒤 자신을 대신하여 전사한 신숭겸과 김락을 위해 지묘사(智妙寺)를 지어 위로하였는데 이 지묘사는 후일 없어지고 말았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대구는 왕건에 관련된 지명이 남게되었는데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는 파군재(破軍齋),왕건의 탈출을 비추어 주던 새벽달이 빛났다하여 반야월(半夜月), 왕건이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坐巖) 등을 비롯하여 앞산의 대덕산은 은적사, 안일사와 왕건이 탈출하다가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 갔다는 뜻으로 임휴사(臨休寺) 라는 사명이 만들어 졌다.

왕건은 이곳에서 쉬면서 부처님전에 기도를 드리고 전열을 가다듬어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니 이 임휴사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터전이 되었고 왕건이 묵었던 요사는 임휴사 대웅전 옆에 위치하여 수차의 중창 끝에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전각은 풍우에 훼손되어 불가불 중창의 원력을 세울 수 밖에 없다.

이 전각의 중창은 민족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고려건국의 사실(史實)을 되짚어 대구의 역사적 위치와 동수대전 및 왕건이란 인물사를 다시쓰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서기 921년 영조대사께서 창건한 후 불과 6년 후인 927년에 왕건이 이 신흥사찰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에서 몸을 부처님전에 의지하고 기도로써 난을 피하니 임휴사라는 절 이름은 너무도 당연하고 적절한 명칭으로 역사의 한 단면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으나 1988년 전통사찰로 문화관광부에 등록하여 삼보정재를 외호하고 특히 도심 가까이 자림함에 시민들의 정신적 귀의처로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기도 객 및 참배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5~6평정도로 남아있는 왕건의 임시 거처였던 임휴사 요사채가 왕건이 묵었던 현장으로 비록 지금의 건물이 서기927년에 있었던 건물은 아니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수차 중창, 삼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에 이 귀중한 역사의 현장을 오롯이 되살려 후대를 사는 이들에게 생생한 역사교육의 터전이 되게 하고자 주지이하 전체 신도들의 뜻을 모아 중창의 원력을 세우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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