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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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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스님 시사칼럼]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지혜

정민지 2024-03-20 12:37:20

▪︎ 출연: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시사칼럼’ (2024년 3월 20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善眞)입니다.

오늘은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마음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세간에는 경선에 불복으로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상대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당적 변경이나 반목으로 아수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제 지인은 경선에 탈락을 모두 본인 부덕으로 돌리고, 유권자의 신임을 받지 못했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미력하나마 당에 기여하겠다는 카톡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난세에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채근담에서는 ‘한 걸음 나아갈 때 한 걸음 물러날 줄 알아야 진퇴양난에 빠지는 화를 면할 수 있으며, 일을 시작할 때 일을 멈출 것을 생각해야 호랑이를 타는 위태로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상관없이 오고 갑니다. 조건과 상황이 되면 올 일이라면 오고, 오지 않을 일이라면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두 개의 갈대 다발처럼 타인과의 끊임 없는 관계 속에서, 유기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아 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용기와 지혜는 상호 간의 협력과 조화를 끌어내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덫에 걸린 멧돼지처럼 무모하게 덤벼서 물러설 줄 모르고 오직 나아가려고 만 한다면 목숨을 잃습니다. 나아갈 때는 물러설 때를 생각하면 나아가고 물러남에 탈이 없을 것입니다.

소동파는 ‘한주먹밖에 안 되는 손으로 그대는 무엇을 쥐려 하는가? 한 자밖에 안 되는 가슴에 무엇을 품으려 하는가? 길지도 않는 인생길에 많지도 않는 시간 속에서 그대 무엇을 허덕이는가?’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짧고 죽음의 시간은 불확실하니 세상에 대들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이타심으로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얻으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진퇴를 아는 지혜는 선거나 관직에 나아가는 일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부귀, 공명, 이해, 득실, 걱정, 고민, 두려움, 아픔 앞에서 어떻게 마음을 조복 받아야 하며, 마음을 잘 쓰고 다스리며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금강경에서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합니다. 머물지 않는 지혜의 마음이란 일체 보살은 반드시 형색(色)에 얽매이는 마음을 내어서도 안 되고, 소리(성聲), 향기(향香), 맛(미味), 접촉되는 것(촉觸), 마음의 대상에 얽매인 마음을 내어서도 아니 된다.

현상계의 상대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나와 남이 없고 상대성이 없는 마음에 안주케 해서, 마치 거울에 어떤 사물이 다가와도 다만 비칠 뿐 사물이 지나가면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꽃더미 속을 지났어도 꽃잎에 몸을 젖히지 않는 것처럼, 있음에도 집착하지 않고, 없음에도 집착하지 않고, 없음이 없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번뇌와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은 어느 한 곳에 마음이 머물러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인연화합으로 생겨나고 사라짐으로 실체가 없어 공(空)하므로 머무를 것이 없음에도, 실체가 없는 줄 몰라서 탐욕을 일으킵니다. 공(空)이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는 있고, 하나는 없는, 유와 무를 융합, 상생,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릅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자신의 인격과 가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