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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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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교수 아침칼럼] 석굴암 전실의 목조 가옥 논쟁

정민지 2023-11-04 16:10:30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11월 3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청 문화재 수리기술위원,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 구조 중에서 전실의 목조 가옥 논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석굴암 구조는 그동안 전실의 조성 시기와 전실의 목조 가옥 설치 여부가 주된 논쟁거리였습니다.

석굴암에 전실이 있었다는 주장의 주된 근거로는, 목조 건물에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와당과 철정이 출토되었고, 경주 골굴암이라고 쓰여진 조선시대에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굴암 주변에서 발견된 2개의 아치형 판석을 근거로, 창은 채광의 효과와 통풍의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실 공간이 목조 가옥의 전실이 아니고 개방된 구조였다는 점을 전제로, 전 서울대 윤장섭 교수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석굴암 주실의 원형 돔 천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 감잡이돌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로, 천장이 축조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습기와 극심한 온도 차이로부터 주실을 보호하고, 호랑이를 비롯한 짐승들로부터 예배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실에 목조 건축물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석굴암 전실에 목조 건축물이 있었다는 주장은, 1913년 수리 공사 때 출토된 은장과 철정 등에 의해 입증될 수 있습니다. 
은장은 석굴암 조각들의 기단을 연결할 때 사용된 금속 부재이기 때문에, 석굴암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출토된 철정의 경우도 조각들을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사용된 정이며, 목조 건축에 사용된 쇠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석굴암 수리 공사 시 출토된 철정은 정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철정의 끝부분이 못처럼 머리가 제작된 것도 있고, 철정 길이가 일반 철정보다 2배 이상 긴 것이 있어, 이것으로 돌을 다듬는 정으로 사용했다기에는 굵기가 너무 가늘어 석굴암 수리 공사 시 출토된 철종은 쇠못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석굴암 현장에서 철정은 부러지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10여 개 이상 발견되었습니다. 
만약 석굴암에서 출토된 이 철정들이 석굴암 건축 당시 석공이 조각에 사용한 정이라고 한다면 이는 석봉들의 중요한 연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석굴암 조각을 한 노련한 장인들이 망가지지도 않은 이런 정을 폐기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온전한 형태의 철정이 석굴암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이 철정들이 건축 부재의 부속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 석굴암 본존불의 이마에 있는 백호가 광배의 중앙에 위치하게 보이는 지점은 금강 역사와 연결된 첫 번째 팔부신중과 두 번째 팔부신중 사이 부근입니다. 
이 지점은 석굴암 본존불을 향해 가장 참배하기 좋은 장소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장소는 예배자의 공간이 되어야 하며, 예배자가 비나 눈 등 기상 변화와 관계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기존에 주장된 석굴암 목조 전실의 필요성을 고려한다면, 석굴암 전실의 목조 건축물은 1300여 년 전 석굴암 창건 당시인 서기 751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석굴암 전실의 목조 가옥 논쟁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