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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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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전쟁

문정용 2023-10-11 16:55:27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언젠가 ‘인간의 공격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린 바가 있었는데, 그때와 유사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자연생태계에서 생명체는 자신들의 생존과 종족 보전을 위하여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명작 다큐멘터리인 ‘장수말벌의 세계’ 등을 시청하노라면 강력한 힘을 가진 장수말벌은 유사 종인 힘이 약한 다른 꿀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합니다.

 

우선 척후병에 해당하는 장수말벌이 꿀벌 집을 찾게 되면 즉시 공격을 시작하고, 공격조에 해당하는 다른 동료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페로몬이라는 액체를 뿌려 위치를 알렸기에 금방 동료들이 모여들어 함께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런 전쟁에서 공격자인 말벌과 방어자인 꿀벌들 사이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선 처절한 싸움은 생태계 본능의 세계와 또 다른 이유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들입니다. 

 

인간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인지라 이런 본능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은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 러시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시작한 우크라이나 침공도 벌들의 전쟁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고,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적대적 충돌로 전쟁의 불씨가 되어버린 현실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적대적 관계로 인한 전쟁의 참화를 잘 알기에 생태계 본능의 습성인 공격성을 잘 승화시켜서 최대한 공존의 평화가 유지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은 게 있는데, 그게 스포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접하면서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 성을 축제 화하여 게임으로 승화시킨 일은 그나마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스포츠라는 게임의 종목을 살펴보면 더 구체적으로 그러한 정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우선 우리나라 선수들이 독보적 실력을 보여준 양궁도 실상은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살상용 무기인 화살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총이라는 무기가 생겨나고 그에 준하는 게임이 사격술이 아니겠습니까?

 

태권도나 유도, 그리고 권투와 레슬링 등은 생존을 위해 서로 다투는 전쟁의 상황에서 최 근접전을 치르는 상황이 되는 소위 백병전에 해당 되겠고, 이번 아시안 게임에 3연속과 4연속 금메달을 따낸 축구와 야구 등은 개별적 전투가 아니라 조직적인 단체 전쟁 행위를 게임으로 승화시킨 사례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가,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로 상대방의 도발, 즉 침입을 저지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끔찍한 참상이 벌어지는 전쟁 행위를 억제하는 아름다운 축제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어서 올림픽, 아시안 게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을 성대히 치르는 근본 이유라고 여겨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어떠한 이유에서건 간에 평화와 안락을 추구하도록 하는 가르침을 펼치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싸움, 즉 전쟁을 하라고 가르치신 부분이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자신의 안락을 방해하여 적으로 간주 되는 상대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 상대에 해당하는 적을 6가지로 정의하고 계십니다. 

 

그 6가지를 6적이라고 하며, 바로 안, 이, 비, 설, 신, 의가 그것입니다. 

안이란 보여지는 대상을 봄으로 인해 탐욕을 일으켜 악업을 형성해 윤회의 근본이 되는 상황을 경계하여 적으로 간주하여 싸워서 극복하라는 것이며, 이, 비, 설, 신, 의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상황을 견주어 보면 불교에서의 적은 상대를 둔 외부의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형성되는 내면의 탐욕을 대상으로 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현재의 전쟁 참화와 불교적 전쟁의 바른 이해를 잠시 뒤로 미룬다고 하더라도, 요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주신 태극전사들의 용맹함을 만방에 보여주셨음에 그 공적을 치하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