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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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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경주 토함산 석굴암 창건 배경

정민지 2023-10-06 15:44:01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10월 6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청 문화재수리기술위원,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창건 배경에 대하여 알아볼까 합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 창건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 견해 중 일찍이 제기된 석굴암 창건배경은 호국사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게재된 석굴암과 불국사의 창건 연기 설화는 석굴암의 창건 배경이 전세 부모의 추복임을 매우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미술사학의 태두인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 1944)은 불국사를 김대성 사후 국가가 완성했으며, 석굴암이 위치한 토함산이 신라 오악중 하나인 동악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군사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석굴암을 김대성 개인의 원당(願堂)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우현 고유섭에 의해 주장된 국찰(國刹)설은 그 이후 한국미술사를 발전시킨 선학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삼국유사의 석굴암 창건설화에 의하면 김대성은 전세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조성하였습니다. 국찰설은 전세부모를 신라의 역대 왕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석굴암은 국가의 후원을 받아 김대성의 주도로 창건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석굴암이 동해구(東海口)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동해구 일대에는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사적 제31호 ‘감은사지(感恩寺址)’와, 용이 되어 동해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아내겠다는 유언을 남긴 사적 제158호 ‘문무왕의 해중릉’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해구 일대에는 호국의 관념과 연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유적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국찰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동해구의 유적들과 석굴암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즉, 석굴암은 전세부모인 역대 국왕들을 위하여 동해 바다로 쳐들어오는 왜구를 항복받고자 조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성 의도는 서해바다로 들어오는 마군을 항복받고자 사천왕사를 세운 것과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석굴암은 불국사와 더불어 왕실을 위한 국찰로 창건된 것으로 파악되어 왔으며, 두 절의 창건을 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전제왕권(專制王權) 강화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석굴암과 불국사의 창건이 경덕왕의 전제왕권 강화와 관련 있다는 주장은 경덕왕이 직접 석굴암을 창건하였다는 의견까지 개진됩니다. 경덕왕은 자신을 이상국가를 실현한다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며 신라가 불국토라는 사실을 천하에 과시하기 위하여 부모를 위한 추복사찰을 지었으며 그 사찰이 화엄불국세계를 신라 땅에 구현해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김대성은 단순히 석굴암과 불국사의 공사감독관일 뿐입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대성에 의한 석굴암, 불국사 창건설화는 신라 제38대 원성왕대에 조작되었으며 그 이유는 원성왕이 신라 제33대 성덕왕의 추복사찰로 경덕왕이 석굴암과 불국사를 건립하였다는 건립 당시의 말을 자세히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앙심이나 예술적인 심미안까지 정치적인 의도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하다는 견해가 제시되면서 석굴암 국찰설에 부정적인 의견이 개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의견은 김대성의 창사 계획은 그의 깊은 신앙심의 발로이며 특이한 건축설계는 그의 불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토대로 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설화에서 전생을 역사적인 과거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며, 역사적인 조상으로 보더라도 전생의 부모는 김씨왕실이 아니라 모량리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경조(慶弔)이므로 전세부모를 신라의 역대왕으로 보는 견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창건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