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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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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출가자의 효심

문정용 2023-09-27 10:49:56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음은 여러 문헌에서 전해져 내려옵니다. 

출가 한 스님일지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지극한 효성을 보여준 사례로 조선시대를 사셨던 진묵대사를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출가자가 구도자의 입장에서 세속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어머니를 모시고 수행 생활을 이어가는 일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재가자들에게는 보다 친숙하고 인간미가 묻어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진묵대사의 효성은 지극하여 홀로 계신 어머니를 당신의 수행처 근교로 모시고 와서 매일 문안 인사를 드리는데, 하루는 모기가 너무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밤잠을 설쳤다고 하시니, 그쪽 산신에게 부탁하여 모기가 더 이상 머물지 못하게 했다는 그곳이 전라북도 전주시 왜막촌이라는 곳으로 지금도 모기가 없는지 몰라도 신통한 일입니다. 

 

그 후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자손천년향화지지 터에, 즉 자손이 없어도 천년을 이어 제사를 지내는 향화가 끊이지 않을 명당자리로 알려진 불거촌이라는 데에 묘소를 만들니 뒷날 성모암이라 부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화부인이라는 길손이 고향을 방문하는 길에 하루를 묵어가는 불거촌에서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주인장에게 들려주자 마침 근처에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가 있다고 하여 찾아본 결과 크게 훼손이 되었기에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묘소 밑에 제각을 만들었고, 뒷날 화부인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우면서 성모암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고,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에 누구라도 제사를 지내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하니 무자손천년향화지지란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에 중국 황벽스님의 경우는 진묵대사의 일화와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젊은 황벽스님은 부처님 법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배운다고 하여 홀어머니께 출가할 것을 말하고 길을 떠났는데, 수년이 흘렀어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어 눈이 멀었다고 합니다. 

 

풍문에 들려오는 아들의 소식은 어느 큰 절에서 많은 스님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사찰을 오가는 나루터로 가서 작은 움막을 지어 놓고 지나가는 스님들의 발을 씻겨 주며 황벽스님을 만나고자 하였답니다. 

 

황벽스님은 어렸을 적에 발을 다쳐 발가락 하나가 없었기에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인데, 드디어 어느 날 두 모자는 상봉을 하게 됩니다. 

눈이 먼 어머니를 먼저 알아본 황벽스님은 안타까움에 눈물이 비오 듯 하였으나, 매정하게 견뎌내고 성한 발만 씻고 나머지는 종기를 핑계로 씻지 않았다고 합니다. 씻기를 마친 황벽스님은 간단한 법문을 해 주고 부디 잘 사시라는 말씀을 남긴 채 황급히 자리는 떠나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뒤늦게 그토록 자신이 찾던 황벽스님임을 알아차린 어머니는 황벽을 부르며 따라가고자 강물에 뛰어들었는데,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황벽스님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하고 게송을 읋었는데, 

태어나는 것도 본래 태어남이 없고, 멸하는 것도 본래는 멸함이 없는 법이다. 생하고 멸하는 모습이 본래도 비었으니 실상은 항상 그대로 머문다. 

이 게송이 끝나자 오색서광이 비추이고, 그때 어머니가 오색구름을 타고 천상세계로 올라가면서 아들한테, ‘고맙구나! 너의 법력으로 내가 극락세계로 간다’ 하면서 합장하더랍니다. 

 

훗날 ‘왜 그때 어머니에게 아들 노릇 좀 하시고 잠시라도 잘 모시지 않으셨느냐 물으니 ‘내 공부가 그렇게 까지는 못 됐고 어머니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 냉정하게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어쨌든 출가 구도인은 수행생활에 냉정함이 있어야 한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며칠 후면, 우리 민족 최대명절 한가위 추석인데, 사찰에서는 스님들도 조상님을 위해 불자님들과 합동 차례를 모시지만 출가한 스님들에게 명절은 뭔가 쓸쓸하고 서글픕니다. 

조상님들 차례를 잘 지내드림으로써 복을 짓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