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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희대의 살일마 앙굴리말라 3 상세보기

[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희대의 살일마 앙굴리말라 3

문정용 2023-09-18 08:57:35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세상 어떤 종교에서든 ‘살생을 금하라’는 가르침은 아마도 빠짐없이 등장할 것입니다. 

일일이 살펴보지 않고 현재 우리 이웃에 성행하는 기독교의 경우와 잠시 비교해 본다면 기독교에서는 십계명이 있는데, ‘살인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보이고, 불교에서는 오계 중에서 첫 번째로 ‘살생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살인을 하지 말라’는 말은 단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고, 반면에 ‘살생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훨씬 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논리라면 ‘사람 이외의 생명체는 죽여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해석될 수 있으며, 바이블에 의하면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번성을 위해서 기타 식물이나 동물들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은 그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그들을 죽여도, 죄가 아니라는 생각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해도 이것은 당연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여기겠지요.

 

반면에 불교적 관점은 인간도 자연에 속하고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환경파괴는 마치 자신의 몸 일부에 상처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니 스스로 친환경적일 수밖에 없는 사고를 가졌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전해진 바로는 바이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최초로 사람은 죽인 자는 여호와에 의해 창조된 아담과 이브가 낳은 두 형제 가운데 형인 가인이 아우인 아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교회 지식백과>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의 아들로 성장한 가인과 아벨이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는데,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을 양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각자가 지은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데, 가인은 자신이 지은 농삿물로 제사를 올렸고, 동생인 아벨은 최초로 얻은 양 새끼의 피와 기름을 제물로 드렸음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기쁘게 받아들였으나, 형인 가인이 지은 농산물은 거부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가인이 분노하자 하나님은 ‘네가 올바른 일을 했다면 어찌하여 분노하여 얼굴빛이 변하느냐?’라고 가인을 책망하시고 분노를 다스리라고 당부했지만, 가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동생인 아벨을 죽여 버려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가인은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오히려 자신의 죄를 숨기기에 바빴고, 이에 하나님은 가인이 농사를 지어도 아무런 수확이 없도록 하여 떠돌이 신세가 되도록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벨이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인정받는 이유가 믿음으로써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증거했다는 데, 그 이유는 피흘림의 제사였기 때문이라고 하며, 제사의 주목적은 죄사함이어서 바이블에서는 죄 사함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저로서는 도대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인간이 창조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살인 행위가 자행되었고, 불교의 역사 속에서도 앙굴리말라 같은 살인자가 등장하였는데, 그 살인의 역사가 오늘날도 지속되고 있음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연일 보도되는 묻지마 살인, 흉기 난동, 산책길 살인, 살인 예고 글, 심지어는 간접 살인에 해당한다는 어느 교사의 죽음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살인을 자행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두고 사회 여론이 들끓어서 사형제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주장은 어느 쪽으로 기울지 관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나쁜 스승을 만나 살인을 저질렀고, 다시 좋은 스승을 만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여 출가까지 하였으나 분노한 군중의 돌팔매를 맞아 과보에 순응하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동편 땅에서 가정을 이루어 에녹성을 이루고 살았으니 두 경우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상큼한 아침 출근길에 유쾌하지 못한 내용을 보내드려 송구하기 그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