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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고려시대 수구다라니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유물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고려시대 수구다라니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유물

정민지 2023-09-08 17:57:21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9월 8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수리기술위원,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의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불상 안에 넣은 수구다라니의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 여래좌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중수발원문과 함께 발견된 수구다라니는 우리나라의 불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오랜, 연대가 나와 있는 유물입니다.

자운사 목조아미타 여래좌상 복장에서 나온 수구다라니 위쪽에는 ‘여의 보인 대수구다라니 범자군 다라상(如意寶印大隨求陁羅尼梵字軍陁羅相)’이라는 다라니 이름이 적혀 있고, 좌측 아래쪽에는 ‘대정 이십사년 갑진(大定二十四年甲辰)’이라는 연대와 간지가 적혀있는데, 여기서 큰 ‘대(大)’자에 정할 ‘정(定)’를 쓴 ‘대정(大定)’은 금나라 제5대 황제인 세종 ‘완안 옹’의 연호로, 이것은 1161년부터 1189년까지 28년간 사용한 연호로 대정 24년은 1184년을 가리키고 이때 간지는 갑진년이었습니다.    

 

중앙의 도상은 연화 대좌 위에 둥근 다라니가 올라간 모습인데, 그 구성은 삼중 원형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는 보관을 쓰고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보살이 연꽃 위에 왼쪽 무릎을 올린 채 꿇어 앉아, 왼손에 둥근 형태의 물건을 들고 있고,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 보살을 중심으로 범자 다라니가 펼쳐지는데, 총 21줄의 나선형 다라니는 보살의 왼손 부근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 나가고, 가장자리에는 연꽃 위에 올려진 33개의 밀교 법구와 보살 좌상 등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 좌상에서 발견된 수구다라니는 연대가 찍혀 있고 유일하게 제작 장소와 목적이 드러나 있는 아주 중요한 유물입니다.

중국에서는 수구다라니가 무덤에서 발견되지만, 우리나라의 수구다라니는 주로 불상에서 발견되는 것이 특징인데,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 여래좌상 외에도 보물 제1571호인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 좌상과, 보물 제1619호인 충청남도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불 좌상, 보물 제1649호인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불 좌상, 그리고 보물 제2072호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불 좌상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광주 자운사의 목조아미타여래 좌상에서 나온 수구다라니는 고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가운데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한쪽 다리를 꿇고 앉은 보살상과 범자 다라니, 밀교 법구들, 구슬을 꿰어 만든 영락(瓔珞)으로 화려하게 꾸민 수구다라니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중국,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사례입니다.

그동안 불상 안의 다라니는 불상 안의 물건들을 보호하는 충전재 역할로 언급되었는데,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 좌상에는 수십 장씩 넣어진 다른종류의 다라니에 비해 오직 한 장만 넣어졌고, 유일하게 연대와 제작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게다가 ‘법계 망자 왕 정토지원(法界亡者往淨土之願)’이라는 망자가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제작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수구다라니를 불상 안에 넣은 자는 극락왕생에 효험이 있는 수구다라니를 만들어 떠난 이의 명복을 비는 염원을 그 속에 담고, 그 염원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살아생전에 빌고 의지했던 부처님 안에 넣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고려시대 불상에 넣은 수구다라니의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