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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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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교수 아침칼럼] 청암사 수도암

정민지 2023-06-16 09:22:37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아침칼럼’ (2023년 6월 16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청암사 수도암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청암사 수도암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에 1164년 전 859년 신라 헌안왕 3년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국사가 수도 도량으로 창건한 암자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입니다.

행정구역상 김천에 속하나 남쪽으로 거창군 가북면 경계와 맞닿아 있고, 동으로는 가야산, 서로는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산 중턱 해발 940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청암사사적에 의하면 수도암은 신라 제47대 헌안왕과 제49대 헌강왕에 걸쳐 창건된 사찰이며 도선국사의 비보사찰로,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전소된 뒤 최근 들어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약광전(藥光殿) ·선원(禪院) ·관음전(觀音殿) ·나한전(羅漢殿) ·노전(爐殿) 등이 있으며, 보물 제296호 석조보살좌상과 보물 제297호 3층석탑, 보물 제307호인 석조비로자나불상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과 초석이 남아 있습니다.

이 중 약광전의 석조보살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립니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되는데, 이는 약사여래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것입니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전합니다. 당시 이 불상 운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서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합니다.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고 합니다.    또 3층 석탑은 도선이 창건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옥녀직금형’ 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수도암의 건물배치는 지세를 따라 구성된 터의 4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지고, 배치변화 과정을 추측해보면 석탑, 석불, 석등의 위치나 고맥이석이 조식된 지대석 등의 고(古)부재가 주불전 영역과 하단의 석축 아래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창은 통일신라시대로 보입니다.

오늘은 청암사 수도암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