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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대구 달성 옥포 용연사 극락전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대구 달성 옥포 용연사 극락전

문정용 2023-05-02 10:55:27

최영식 문화재청 수리기술위원/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교수
최영식 문화재청 수리기술위원/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교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비슬산 옥포 용연사 극락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슬산 용연사는 지금으로부터 1,111년 전인 서기 912년 신라 제53대 신덕왕 원년에 보양국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합니다. 그 후 1419년 조선 제4대 세종 1년에 천일대사가 다시 지었고,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지었습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200여 칸이 넘고 승려도 500여 명이나 되는 큰 절이었다고 전합니다.

현재 용연사 경내에 중요문화재로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보물 제539호인 적멸보궁 금강계단이 있고, 1728년에 세운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1호 극락전과 극락전에 봉안된 보물 제1813호인 목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 및 복장유물과 보물 제961-3호인 묘법연화경, 그리고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8호인 3층 석탑과 14기의 부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극락전은 부처와 중생이 동거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으로, ‘무량수전’, ‘아미타전’이라고도 합니다. 

용연사 극락전은 근년에 발견된 상량문에 약 270년 전에 건립한 것으로 나타나 1700년대 초엽에 중건한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다포식 맞배지붕건물로, 화강석 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워 지었습니다.

극락전 전면은 2단의 궁판을 둔 교살문양 4분합문을 달았고, 측면 전면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하였으며, 극락전 배면 가운데 어칸에는 띠살 쌍여닫이문이 있고, 극락전 기둥 위의 공포(栱包)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건물 상부를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습니다.

극락전 전면 기둥위에 앞으로 내민 살미첨차는 길이가 짧고 끝을 수직으로 절단하고 소 혓바닥을 위로 치켜든 모양인 앙서형으로 만들고 그 위에 연꽃봉오리를 초각하였고, 살미첨차 상부에는 구름 모양의 운공(雲工)과 용머리를 장식해 놓았습니다.

극락전 내부는 장귀틀과 동귀틀을 결구하고 청판을 끼운 우물마루 바닥을 깔았고, 배면 가까이 내진고주 2개를 세워 그 고주 사이를 후불벽으로 처리하여 법당에 불단을 꾸몄습니다. 

그런데 극락전임에도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그 협시보살로 봉안하고, 후불탱화또한 아미타불을 그린 미타탱(彌陀幀)이 아니고 석가모니가 십대제자 등에게 설법하는 영산탱(靈山幀)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특히 이 영산탱은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1725년 7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0세에 사망한 효장세자의 빈궁 조씨를 비롯한 몇몇의 시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극락전 내부 천장은 층단반자로 꾸미고 층단 벽에는 불벽을 치고 벽화를 그렸는데, 상단천장은 소란반자로 꾸미고 금단청을 화려하게 올렸으며, 불단 위에는 보개를 얹고 운각과 용을 장식하여 장엄해 놓았습니다. 

옥포 용연사 극락전은 18세기 다포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 단청의 뛰어난 기법과 고아한 벽화의 수법 역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구 달성 비슬산 옥포 용연사 극락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