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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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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스님 시사칼럼] 절은 절하는 곳이다

정민지 2023-03-08 11:34:15

▪︎ 출연: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시사칼럼 (2023년 3월 8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善眞)입니다.

오늘은 절은 절하는 곳이다. 라는 제목으로 마음 나눠 보겠습니다.

절은 절하는 곳이라 해서 절이라 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은 본래 마음속에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를 갖추고 있으므로, 부처라 여기며, 절을 합니다. 불상, 불탑, 탱화 어떤 것에 경배를 하던, 누구에게나 예배 공경하나, 결국 내 안의 불성을 향해 절하는 것이 되므로, 본체와 현상, 나와 남, 부처와 중생,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하나인 생명자리로 여여평등 하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최초의 사찰인 성문사(省門寺, 肖門寺), 이불란사(伊弗蘭寺)와 더불어 신라 눌지왕 때에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의 모례(毛禮)의 집에 와 머물면서 몰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절이란 말은, 신라불교 초전기의 모례(毛禮)와 관련되어 ‘모례 – 털례 – 뎔례 – 절례 – 절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물질이 풍요로운 현대인들의 관심은 항상 안이 아닌 바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필요한 긴장과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육체와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여 진정한 인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실용적인 모든 요가의 집대성이 절 수행법입니다.

선가 귀감에 절(예배)이란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절 수행을 하면 마음의 번뇌를 다스려 번뇌 망상은 쉬어지고, 마음을 평화롭게 안정시키며 지혜를 개발하여 참된 나'를 만나, 탐욕은 자비로 분노는 용맹으로 어리석음을 지혜로 바꿔서 지복의 기쁨과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원각경 약소초(圓覺經略疎抄)에서는 오체투지를 통해 다섯 가지 번뇌인 오개(五蓋)를 제거한다고 말합니다. 오개(五蓋)란 수행을 방해하는 다섯 번뇌로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수면(睡眠)과 들뜸과 의혹입니다.

옳은 절의 마음자세로는, 지극하게 몸과 마음으로 절하는 것, 사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절하는 것, 절하는 그 자체를 통하여 명상으로 진입하는 것, 절하는 그 자체를 하나의 수행으로 보고 절하는 것, 나와 남을 하나로 보고 절하는 것, 나보다 못한 이를 대할 때 큰 연민의 마음으로 절하는 것,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절하는 것, 절하는 그 자체가 참다운 진여 본성에 계합하여 우주본성의 빛으로 합해진 절을 말합니다.

옳지 못한 절하는 마음자세로는 속으로 상대방을 깔보면서 형식상 절하는 흉내를 내는 것, 남에게 절을 잘 한다는 칭찬을 듣기위해서 절하는 것입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공손한 자세로 머리 숙여 절하면 살아가면서 남과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자기종교와 신념이 다르다고 아만 교심하여 절에 와서 절하지 않고, 합장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통으로 하나로 어우러진, 절이고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정한 종교에 몸담지 않고 종교를 떠나 우리 안에 내재하는 순수한 형태의 종교성을 배우고 꽃피우기 위하여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지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열린 마음 자세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내 몸과 말과 생각을 깨끗이 하여 빠짐없이 절을 하여 쉬지 않으리라, 보현행원(行願)의 위신력으로 모든 부처님 앞에 수많은 몸을 널리 나타내고, 한 몸에 다시 먼지 수의 많은 몸을 나타내어서 먼지 수의 부처님께 예배하리라라 고 말했습니다.

일상생활 시공간에서 모든 사람, 사물, 자원, 환경에 공경하고 예를 갖춰 마음의 향을 사루고, 절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본성의 밝게 빛나는 신묘한 힘을 얻어,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살아있는 생명의 지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