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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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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스님 시사칼럼] 새해 덕담(德談)

정민지 2023-01-11 09:36:47

▪︎ 출연: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시사칼럼 (2023년 1월 11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입니다

오늘은 새해 덕담(德談)이라는 제목으로 마음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덕담은 새해를 맞이하여 서로 복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축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최남선(崔南善)선생은 ‘이제 그렇게 되라.’고 축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셨다니 고맙습니다. 라고 단정해서 경하하는 것이 덕담의 특색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흔히 어른들에게는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며, 연소한 사람들에게는 “새해에는 소원 성취하게.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네.” 하는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육당이 언급한 대로 ‘벌써 되셨다지요.’ 라고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나, 지금 관습에서는 그렇게 기정사실처럼 덕담을 주고받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서로간의 소원을 축하해주는 세시인사에는 심리적 언령관념(言靈觀念)으로, 우리 선인들은 음성과 언어에 신비한 힘이 들어 있어서, ‘무엇이 어떻다.’ 하면 말 자체가 그대로 실현되어지는 영력(靈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덕담은 곧, 그러한 언령적 효과를 기대한 데서 생긴 세시풍속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말은 생각에 의하여 생겨나서, 영혼에 기록된 그 느낌을 표현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다가올 내일을 창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덕을 파자적 해석(破字的解釋)을 예외로 하면, ‘득(得)’으로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하고, 안으로 나에게 획득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공자님은 대학에서 그 본성의 덕을 밝히는 것은 명덕(明德) 명명덕(明明德)이라 했고, 노자는 덕을 남과 경쟁하지 않는 부쟁지덕(不爭之德)이라 했습니다.

불교 선종(禪宗)의 역사에 따르면, 달마 대사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지 500여 년이 지난 때, 소문을 들은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찾아가 나눈 이야기가 육조단경에 나옵니다.

양무제는 생전에 탑을 많이 지었으며, 또한 손수 불경을 강의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제를 불심천자(佛心天子)라 불렀습니다.

양무제가 달마를 찾아가, “짐이 그동안 절과 탑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달마가 “소무공덕(小無功德) 조금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요?” 

“불식(不識) 모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달마와 양무제 사이의 나눈 이야기에는, 불교의 골수법문이 다 들어 있습니다. 평소 탑을 짓고 경전 불사를 많이 했는데, 공덕이 전혀 없다고 말했고, 당신은 누구냐? 물으니 모른다고 대답을 합니다. 평소 탑을 짓거나 불사하는 공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지어나감에 개인적인 복덕보다는 공덕을 많이 지어야하고, 참된 마음, 본성에 바탕을 둔 상이 없는, 함이 없이 하는 공덕을 지어야 만이 진정한 공덕, 해탈의 복 밭이 된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누구냐?” “모른다.” 라는 말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들의 본래면목, 부모미생전에 본래면목인 너의 맨 정신이 무엇인가? 참된 나는 누구인가?’ 라는 말입니다. '이 본래면목 자리, 천하모(天下母), 절대무(絶對无)는 불가사의하여 알 수 없으므로, 일체 언어문자 사량 분별이 끊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모른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선한 일에 서두르고 악으로부터 마음을 지켜라, 공덕 있는 일에 게으르면 마음은 악한 것을 즐기기 쉽다.’ 고 말씀 하셨습니다.

새해 덕담으로 ‘올해는 취직을 해야지, 결혼해야지, 살을 좀 빼야지, 손주 좀 봐야지’, 이런 말을 하면 덕담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시의 적절하게 좋은 덕담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모양과 머무름이 없는 공덕을 지어 가야 하겠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