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불국사 범영루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불국사 범영루

정민지 2023-01-02 09:41:16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2022년 12월 30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경주 불국사의 범영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서기 751년 신라 제35대 경덕왕 10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한 불국사는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의하면,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한 이듬해인 528년 신라 제23대 법흥왕 15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과 기윤부인(己尹夫人)이 이 절을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574년 신라 제24대 진흥왕 35년에는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불국사를 중창하고 승려들을 득도하게 하였으며, 왕의 부인은 비구니가 된 뒤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불상을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670년 신라 제30대 문무왕 10년에는 불국사의 강당인 무설전(無說殿)을 짓고 신림(神琳)과 표훈(表訓) 등 의상(義湘)의 제자들을 머물게 하였다고 전합니다.

  현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의 복장기에서 이 불상들이 681년 신라 제31대 신문왕 1년 4월 8일에 낙성되었다고 하였으므로 당시의 불국사는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대웅전과 무설전을 갖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국사가 대찰이 된 것은 김대성에 의해서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75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774년 신라 제36대 혜공왕 10년 12월에 그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완공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뒤 국가에서 완성시켰기 때문에 불국사는 김대성 개인의 원찰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원찰로 건립되었다는 설이 맞을 것 같습니다.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는데, 이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이고, 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석단은 크고 작은 돌을 함께 섞어 개체의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고, 굵고 굳센 돌기둥과 돌띠로 둘러 견고한 통일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석단은 불국세계의 높이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 세계의 반석 같은 굳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두 모퉁이 위에는 경루(經樓)와 종루(鐘樓)를 만들어서 한없이 높은 하늘을 향하여 번져가는 묘음(妙音)의 위력을 나타내었습니다.

  불국사 입구 전면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누각인 범영루의 목조건물은 1969~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발원으로 시작된 복원 공사 때 옛 모습대로 정면 1칸, 측면 2칸 3층으로 복원한 것이지만, 범영루의 하부 석조기단은 신라시대 당시부터의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범영루를 받치고 있는 수미산 형태의 돌기둥은 8세기 중엽 불국사가 건립되었을 때 세워진 원래의 기둥으로 목조건축 부재인 첨차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입니다.

  범영루는 처음에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불렀습니다. 수미산모양의 팔각정상에 누를 짓고 그 위에 108명이 앉을 수 있게끔 하였으며, 여기에서 108이라는 숫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번뇌를 안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10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범영루는 751년 경덕왕 10년에 건립하였고, 1593년 조선 제 14대 선조 26년에 불탄 뒤 1612년 조선 제15대 광해군 4년과 1688년 조선 제19대 숙종 14년에 중건하였으며, 1708년 숙종 34년에 단청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경주 불국사의 범영루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