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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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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역사속 여왕 이야기

문정용 2022-09-14 16:03:05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1999년 국빈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경북의 하회마을과 봉정사를 방문했던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소식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세 분의 여왕이 등장하며, 신라의 선덕여왕이 최초의 여왕입니다.

이름이 김덕만, 진평왕과 마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인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당시 신라 최고 의결기관이었던 화백회의에서 그녀를 여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632년에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은 전국에 관원들을 파견하여 흉년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등 민심을 달래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고,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여 괴롭히고 있을 때, 김춘추와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기용하여 국가적 재난을 잘 극복하는 최고 지도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자장 스님과 함께 호국 의지가 가득 담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게 되는데, 황룡사 호국용이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9층 탑이 완성되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조공을 바칠 것이며 왕업의 길이 태평할 것이라고 하는 자장 스님의 말씀을 듣고 탑을 세우는데 온 정성을 쏟아 넣었습니다. 

 

신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시기에 선정을 베풀고 자장 스님을 중심으로 호국 불교를 장려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던 것입니다.

선덕여왕은 647년 승하하시고 이어 승만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이분이 진덕여왕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진덕여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승만이고, 어머니는 박씨 월명 부인이며,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 갈문왕의 딸이다.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우며 키가 일곱 자이고 손을 내리면 무릎까지 닿았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선덕여왕에 이어 또다시 여왕이 즉위하자 반대 세력이 많았지만 정치적 영향을 잘 발휘하여 8년을 재위하고 654년 승하하시게 됩니다. 

 

또 한 분의 여왕은 신라 51대 왕인 진성여왕입니다. 887년에 즉위하여 정치적 이념을 극복하려 했지만, 정국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897년에 조카인 효공왕에게 왕권을 물려주게 됩니다.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왕의 치세가 신라에 세 번이나 있었는데, 삼국시대인 고구려, 백제에도 없었던 여왕이 유독 신라에만 존재했던 일은 참으로 희한한 역사적 사건으로 비춰집니다.

 

불교가 융성한 시기에는 여왕의 존재가 있었지만, 남성 중심의 유교가 번성하면서 여왕의 등장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라의 세 여왕 이후 1,115년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으로서 국가원수에 오르자 신라의 여왕들이 재조명되거나 비교되기도 하여 흥미를 끌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여왕이 등장한 나라는 529년에 즉위한 일본의 스이코 덴노이며, 중국 역사에서는 측천무후가 여황제로 이름에 올린 유일한 인물이고, 영국에서는 총 15명의 여왕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안동 하회마을에는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봉정사에서는 별도의 49재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훈훈한 마음이 듭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께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