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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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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스님 시사칼럼] 중심을 잡아야 속지 않는다

정민지 2022-09-07 09:10:59

▪︎ 출연: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시사칼럼 (2022년 9월 7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입니다.

오늘은 ‘중심을 잡아야, 속지 않는다.’ 라는 제목으로 마음 나눠 보겠습니다.

 

요즘 집권 여당의 이준석 사태로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돈스러운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들이대는 감투를 위한 전쟁이 사태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나이가 아무리 어리지만 당원들이 뽑은 선출직인 당대표를 흔들어 덜어 내겠다는 발상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과 무지로 빚어낸 탐욕이 결과물입니다.

 

며칠전, 저녁 산책길에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저를 붙잡으시고 “이준석이 왜 쫒아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라꼴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시는 말씀을 경청하고, “어르신 찍어주시고 왜 그러십니까?”라고 말씀 드렸더니 “속았다”라는 말씀 한마디 하시고 길을 떠나셨습니다.

얼마나 현실이 답답하시면 지나가던 승려를 붙잡고 ‘속았다’는 말씀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화경에서도 ‘삼계(三界)는 편안치 못함이 불타는 집과 같아서 뭇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니 심히 두렵도다’ 라고 했습니다. 양심과 정도를 지키지 못하는 정치는, 원래 난장판 시정잡배의 놀이터 입니다.

유마경에 ‘연꽃은 높은 산이나 육지에서는 자라지 않고, 낮고 축축한 진흙 속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이 번뇌의 진흙 속에서 우리는 깨달음의 연꽃을 피워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정치는 속성상 본래 난장판이니 기대도 걸지 말고, 평탄함도 쫒지도 말고, 마음에 중심을 잡고 느긋하게 혼돈을 즐길 줄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혼돈 속에 즐기자’ 라는 말은 세상의 변화와 불의에 침묵하고 무관심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변화에 처해서 즐길 줄 모르면 심화가 생겨 울화병(火病)이 생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나도 속고 너도 속았다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속는 것도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생깁니다. 자기 자신이 미망에 가리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 항상 깨어 있으면,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민심을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선어록인 무문관 48칙에 서암 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 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 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예전부터 허상(虛像)을 자기로 알고, 헤아릴 수 없는 과거부터 생사의 근본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마음이 오염되어 있기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이 다 속임수로 우리들은 속이는 세상에 살면서,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인공이 아닌 손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권력을 향한 의지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은 모두 마음의 작용입니다. 일체 대상에 속지 않고 살아가려면 에고를 버리고, 중심(中心)을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중심(中心)은 바로 중도(中道)에 존재(存在)하는 것입니다. 중도에 존재하라는 것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의 미발(未發)을 중(中)이라 했습니다. 생각 감정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 우리의 청정한 본래면목, 본성 자리가 중도(中道)입니다.

우리가 속임 당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속인 바, 자신이 속았지 누가 속인다는 말입니까? 속임을 당하지 않고자 할 때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