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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경주 황룡사지내 구층목탑 심초석(心礎石)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경주 황룡사지내 구층목탑 심초석(心礎石)

정민지 2022-08-12 09:13:32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2022년 8월 12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부터 경주 황룡사지 목탑지 심초석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초석은 목탑의 가장 중앙에 있는 초석으로, 목탑의 중심기둥인 심주(心柱)를 받는 주춧돌을 심초석(心楚石)이라 합니다. 

  심초석은 큰 중량을 받기 때문에 규모가 크며 여기에 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사리를 봉안하는 사리장엄구를 봉안하는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심초석은 탑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구조적 역할도 합니다. 

  사적 제6호인 경주 황룡사지 목탑지에는 심초석과 함께 64개의 초석이 있었으나 현재는 62개의 초석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것은 심초석을 덮고 있는 덮개석입니다. 황룡사지 목탑지의 심초석의 크기는 동서길이 4.35m 남북길이 3m의 타원형으로 두께는 1.04~1.28m이고 무게는 약 30톤에 이릅니다. 

  1978년 발굴조사 당시 심초석의 사리공에는 서기 872년 신라 제48대 경문왕 12년에 제작된 찰주본기 명문이 적힌 금동사리함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심초석 하부에서 청동제 팔찌, 청동제 그릇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주 황룡사지 9층 목탑지 발굴조사와 관련된 일화 중 당시 목탑지의 심초석을 들어보기로 하였는데 30톤에 달하는 심초석을 들어 올릴 장비가 없어 수소문끝에 포항제철에 협조를 구했지만 거대한 크레인을 황룡사지 목탑지가 있는 현장으로 가져 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황사에서 황룡사지 목탑지로 이어지는 길에 단단한 돌을 깔고 다지는 작업을 한 후 힘겹게 현장으로 크레인이 들어와 덮개돌 밑의 심초석을 들어 올리니 심초석 아래에는 예상대로 심초석을 받치기 위해 잘 다져놓은 적심석(積心石)이 깔려 있었고, 이를 통해 평평하지 않은 자연 지형에 거대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든 신라인들의 지혜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유물이었습니다. 심초석이 놓였던 자리를 10㎝가량 조심스럽게 파내자 청동거울과 금동 귀고리, 청동그릇, 당나라 백자항아리 등 3천여 점의 유물이 한꺼번에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탑을 세울 때 귀족들이 사용하던 장신구를 부처에게 바친 공양품과 액땜을 위해 땅속에 묻는 예물인 진단구(鎭壇具)였습니다. 심초석안의 사리공 이외에도 유리구슬이나 금제귀걸이를 비롯한 그릇 등과 같은 지진구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신라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금귀고리는 장례용 의례품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황룡사 공양품으로 발원자가 착용한 귀고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것이 신라시대 실생활에도 쓰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귀고리는 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 연도가  645년이라는 시기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신라 귀고리의 양식이나 편년을 비교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주 황룡사지내 9층목탑지 심초석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