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백제 청동소탑과 고려 금동탑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백제 청동소탑과 고려 금동탑

정민지 2022-07-01 09:16:04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2022년 7월 1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백제 청동소탑과 고려 금동탑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부여 천왕사지 부근에서 출토되어 국립 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청동소탑편(靑銅小塔片)은 6~7세기 백제시대에 제작된 청동으로 만든 탑의 일부로 실제 건축물이 남아있지 않은 백제건축의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높이가 5.2cm 정도 밖에 안되는 공예탑이지만 백제시대 목조건축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료적 가치가 아주큽니다. 

  탑신부와 옥개가 남아 있는데 당시 목조건축양식을 살펴 볼 수 있을 정도로 건축부재의 표현이 잘 되어있습니다. 탑신 각면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과 중간기둥 2주씩이 있고, 지붕에는 기와골까지 세밀히 조각돼 있어 백제 장인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지붕 내림마루에는 장식기와가 돌출돼 있고, 끝단에는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였는데 이곳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미루어 풍경을 걸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백제 청동소탑편은 백제시대의 목조건축양식이 일본 고대건축에 미쳤던 영향을 알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서기 538년 백제 제26대 성왕 15년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건축도 함께 전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백제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사원 건축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백제 목조건축이 남아있지 않은 지금, 1400년 전 백제 사비시대의 목조건축은 하앙식이었을 거라 추정하는 가운데 이 백제 청동소탑편에는 일본건축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하앙식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방식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일본 나라현 호류지의 금당과 같습니다. 1400년 전, 일본 아스카지다이에 유행했던 건축기법으로 당시 백제 건축양식이 일본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삼성문화재단 리움 미술관(Lee museum)이 소장전시 중인 국보 제213호 금동탑은 의장이 화려하고 정교하여 법당 내에 모셔둔 사리탑의 일종으로 추측되는데,  이 금동탑은 고려시대 전기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155cm로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전승기념으로 세운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고려시대에는 금속으로 작은 불탑을 만들어 절에 바치는 풍습이 있었고, 이렇게 절에 공양된 금속제 탑들은 대개 높이가 20∼30㎝ 정도인데, 이 금동탑은 높이가 155㎝로 그 규모가 아주 큰 편입니다. 

  현재 탑신은 5층이지만 원래는 7층 이었을 것으로 보이고, 원래 높이는 지금보다도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고려 금동탑은 청동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도금을 입혔으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금빛이 다소 바래긴 하였지만 여전히 화려한 본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각 층을 각각 따로 주조한 뒤에 합친 것 같고, 고려시대 목탑과 석탑 양식이 모두 다 들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단과 머리장식에서는 석탑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고, 난간이나 지붕 등 탑의 전반적인 형태에서는 목탑의 형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각 부분에 꾸밈이 많은 점이나, 탑에 매달린 장식들이 많은 점에서 공예탑이 분명하면서도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대형 금속공예품이면서도 세부표현이 정교하여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고려시대의 목탑을 이 작은 금동탑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셈입니다. 

  문화재 현장에서 조선시대 이전의 목조건축을 복원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천년세월을 묻혀 있다가 발굴되는 이러한 금동탑은 앞으로도 더 있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성급한 문화재 복원은 좀더 신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은 백제 청동소탑편과 고려 금동탑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