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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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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했더 라면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

문정용 2022-05-27 09:22:00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에 관오사라는 사찰이 있고, 관오사와 담벼락을 마주한 곳에 대광불자회라는 소박한 법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시각 장애를 가진 맹인불자회의 법당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는데, 저는 10여 년 전부터 매월 법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맹인불자회 회원님들은 주로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엊그제 법회에 이런 이야기로 라면을 대접해 드리고 왔습니다. 

 

그 라면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책을 한 권 소개해 드린 것이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 였습니다. 

 

일본의 한 의사가 1천여 명의 죽음을 지켜보고서 쓴 책인데, 스물다섯 가지로 라면을 이야기 하면서 후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후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친절을 더 많이 베풀었더라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 두었더라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 보았더라면, 결혼을 했더라면, 자식이 있었더라면, 자식을 혼인 시켰더라면, 남길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건강할 때 마지막 나의 의사를 밝혔더라면,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등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라면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저는 저의 남은 생을 생각하면서 여행에 관심이 제일 많이 갑니다. 

선방 수좌 시절에는 걸망 하나 달랑 메고 전국을 떠돌 수 있었는데, 상락선원이라는 건물에 법당을 차리고 입주해 있으니 건물 지킴이가 되어 꼼짝없이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습니다. 

높은 산도 오르고 시원한 바닷가에서 텐트 치고 파도 소리 들으며 잠을 청하고, 계곡에 누워 모기 떼에 물려가며 책을 읽고 싶기도 합니다. 

차를 몰고 산골 오지를 헤집고 다니고 싶습니다.

 

불국사에서 한 철을 지낼 때, 작은 스쿠터 오토바이를 장만하여 수행을 쉬는 날에는 경주 땅, 구석구석의 명승지와 유적지를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여름철에 제주도에서 바다 갓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았고, 한라산 자락을 종횡으로 누빈 기억이 언제나 새롭습니다. 

 

전 세계를 누비지는 못했지만, 미얀마 땅 오지 마을을 여행했던 즐거움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이제는 남은 삶에 건강을 소중히 생각하고, 어느 날 닥칠지 모르는 연명치료는 강력히 거부하며, 시신은 기꺼이 기증하고자 합니다. 

 

출가한 승려로서 기억에 남는 연애라든지, 자식이나 유산 따위는 일찌감치 인연이 없으니 정리되었고, 탁발로 사는 삶이 근본이니 맛있는 음식을 탐할 리 없고, 시주자들에게 감사와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친절을 베풀면서 더욱 겸손하고자 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사유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지지율이 현격하게 떨어진 더불어민주당이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읍소하며 고개를 숙인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국민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에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저 역시도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시각 장애를 가진 분들을 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고 이런 저의 바람이 그 분들에게 어떻게 받아 드려 질지 모르겠으나, 저는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의 바람을 물어 무엇을 했더라면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떤 삶일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