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식교수 아침칼럼] 한국 탑의 장엄에 대하여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한국 탑의 장엄에 대하여
정민지 2022-04-22 09:07:07
■ 출연: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2022년 4월 22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교수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석탑의 장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석탑을 장엄하는 데는 탑 표면에 조각으로 구체적인 대상물을 남기는 방법과, 따로 제작한 장식물을 탑에 부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탑의 장엄은 인도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조가 우리나라 탑과는 다르기 때문에 장엄 내용도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형식은 평면 4면의 구조에 2중의 기단을 가진 형태입니다.
석탑의 기둥과 기둥 사이 면석이 8세기에는 하층기단에 12면, 상층기단에 12면이 나타나고, 9세기 석탑에는 하층기단에 8∼12면, 상층기단에 8면이 나타납니다.
이들 석탑의 빈 공간에는 사방불(四方佛)이나, 보살상(菩薩像)이나, 제석천상(帝釋天像), 범천상(梵天像),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사천왕상(四天王像), 팔부중상(八部衆像), 십이지상(十二支像), 천인상(天人像) 등이 장엄되었습니다.
1층 탑신에 목탑을 모방한 문이 조각되면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있고, 문이 없으면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불국토를 지키는 신장상들 입니다.
또한 상층기단과 하층기단에는 팔부중상이나 십이지상들이 조각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석탑만이 갖고 있는 특징입니다.
탑의 부조상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사방불과 보살상 조각인데, 이것은 탑이 불국토와 다르지 않다는 불교적 공간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부조상들을 조합하기도 하는데, 지리산 구례 화엄사에 있는 보물 제133호 서 오층석탑과 같이 하층기단으로부터 십이지상-팔부중상-사천왕상 순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위계를 표현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 석탑에 따로 제작하여 부착한 장엄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이 방식이야말로 탑의 다양하고 화려한 장엄의 극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탑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살펴봐야지만 합니다.
가장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방법은, 옥개석 처마 모서리 양쪽에 나있는 작은 구멍입니다. 지금은 없지만 이 구멍에 금속으로 만든 풍탁을 매달아 걸었습니다.
위에서 볼 때 옥개석 모서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있는데, 이 경우는 통일신라시대 목조 건축물에 쓰였던 곱새기와 모양의 망와(望瓦) 형태나, 불꽃무늬 구슬모양 화염보주(火焰寶珠)를 금속으로 만들어서 고정시켰던 구멍입니다.
특히 석탑 제일 상층부 옥개석에 쓴 구슬 모양 금속은 상륜부의 보개에서 네 방향으로 고리모양의 끈으로 연결하고, 그 고리 하나하나에 풍탁을 장엄하였습니다.
이렇게 장엄한 풍탁들은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제각각의 빛과 서로 다른 음률의 소리를 내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조상들은 석탑을 장엄할 때, 시각적인 장엄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장엄도 배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장엄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지만 원래 경상북도 김천 오봉동에 있었던 국보 제99호 갈항사지 3층 석탑의 경우, 탑 표면에 수없이 많은 구멍들이 있는데, 이 구멍 구멍에 끼워진 고리에 풍탁과 구슬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또한 경주 덕동댐건설 당시 경부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존하고 있는 국보 제38호 고선사석탑의 1층 탑신에는 금속으로 문(門)의 형상을 만들어 붙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석탑은 탑 자체의 조형성도 아름답지만, 온갖 장식물들로 탑을 장엄 했던 미적 표현을 통해 더욱더 심오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석탑의 장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