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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양가득죄는 말아야! 상세보기

[혜문 스님의 시사칼럼] 양가득죄는 말아야!

문정용 2022-03-30 16:32:37

대불청 지도법사이자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대구BBS 라디오아침세상 시사칼럼

■ 대구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봉덕동 상락선원장 비구 혜문입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직접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던 때의 비구라고 해도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대로 잘 살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가해서도 재가 시절에 몸에 밴 습관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던 띳사라는 비구는 부처님의 고모인 아미따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인사를 받기만 하고 살아왔으므로 출가를 하고도 상대방에게 인사할 줄을 몰랐다고 하여, 한 번은 법랍이 높은 비구가 띳사에게 주의를 주었는데, 띳사는 오히려 고함을 치며 불쾌감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를 보고 부처님께서도 점잖게 꾸짖었지만, 띳사는 오래도록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비구는 좋은 잠자리와 보시물을 두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몫이 적다고 폭력을 행사하고 불화와 반목을 조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비구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아주 엄하게 나무라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중에 걸식으로 얻어 먹은 것이 가장 천한 일이다. 이런 걸식을 하는 우리들에게 재가자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보다 수승한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그대들이 걸식의 생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왕의 위협이 두려워서인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도망 나온 것인가? 전염병이 무서워 고향을 등졌는가? 먹고 살기 어려워서 출가하였는가?
그대들이 출가하여 걸식을 하는 까닭은 길고 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더냐?
비구들이여 명심하라!
출가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키우는 행위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한다. 출가자가 출가자의 삶을 살지 못하면 그는 세간의 행복도 놓치고 출세간의 행복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린 이런 경우를 두고 재가의 집에도 죄를 짓고, 승가에도 죄를 짓는 양가득죄(兩家得罪)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어수선했던 대선이 끝나고 정권 인수 작업이 착착 진행되는 모양입니다.

출발부터 대통령 당선자는 국정 수행을 잘 못할 거라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선 것으로 발표되고 있고, 이런 여론조사에 대해서 가슴 깊이 잘 새기고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청와대를 비워 국민에게 돌려주고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기로 한 일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만, 자칫 국민들과 더 멀어진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권력자가 초심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국정 수행이 되리라고 봅니다. 
단지,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만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이미지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 어떤 자세를 가진 자가 깃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중국 당나라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이란 글이 좋은 좌우명이 될 것이기에 옮겨 봅니다.

‘산이 높다고 해서 유명한 산인가? 신선이 깃들면 명산이 되는 것이고, 물이 깊기만 해서 영험하리요, 용이 깃들어 살면 영험한 물이다. 
내 비록 초라한 집에 살지만, 나의 덕향으로 인해 이 집은 향기롭도다.’
공자님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군자가 거쳐하는 곳에 무슨 초라함이 있으리요.

대통령의 집무실이 청와대면 어떻고, 광화문이면 어떠하며, 용산이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실질적 권력 행사자가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되어 있으면 어느 곳이라도 국민의 대통령으로 추앙받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출가 비구들도 몸에 밴 좋지 못한 습관을 쉽게 고치거나 버리지 못하는데, 권력의 달콤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권력 행사가 어떠할지 늘 염려스럽습니다.

운명을 달리한 전직 대통령들, 아직도 영어의 몸인 사람, 사저로 돌아온 사람, 이제 곧 청와대를 비워주어야 할 사람, 그래도 그 자리는 누군가가 이어 갈 것이기에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