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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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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비슬산(琵瑟山)과 비슬산 산사

정민지 2022-02-25 09:12:56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입니다. 

 

 오늘은 비슬산과 비슬산의 산사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슬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 경계에 있는 높이 천35m의 산이며 남쪽으로는 조화봉(照華峰)과 관기봉(觀機峰)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대구의 앞산인 대덕산과 이어집니다. 그래서 비슬산을 대구의 북쪽 경계인 팔공산과 더불어 “북팔공, 남비슬”로 팔공산이 주산이고 대덕산이 안산이고 대덕산 넘어 비슬산은 조산이 됩니다.

 

 비슬산은 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파 ‘비(琵)’자에 거문고 ‘슬(瑟)’자를 쓰서 비슬(琵瑟)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나, 이는 우리말의 소리를 따서 음차한 것입니다. 

 

 비슬산 남쪽 고대 창녕지역에 있었던 진한의 소국 이름이 ‘비사벌’ 또는 ‘비자발’로 불렸는데 이를 ‘비화’라고도 하였습니다. 비화의 ‘화’는 우리말 ‘벌’의 훈차이므로 ‘비사벌’, ‘비자벌’, ‘비자발’로 불렸던 것입니다. 이는 순우리말인 ‘빛’ 또는 ‘벌판’ ‘나라’ 등을 나타내는 ‘벌’이 원래 음가로 여겨집니다. 창녕과 현풍 일대의 옛날 땅 이름이 ‘빛벌’이었고 여기에 있는 산은 ‘빛산’이라 불렸습니다. 이것을 음차한 것이 변형되어 지금의 ‘비슬산’이 되었으니 비슬산의 원래 뜻은 ‘빛의 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슬산의 주봉은 해발 1,083.4m의 천왕봉(天王峰)이고 여기서 북북서 방향으로 해발 794m의 청룡산(靑龍山)과 해발 653m의 산성산(山城山)이 있고, 해발 660m의 대구앞산인 대덕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슬산의 800m 이상 고지에는 평탄면이 많은데, 이것은 과거에는 현재보다 낮은 완만한 구릉지가 이 일대 지각이 융기하면서 신천(新川)과 남천(南川) 등 하천의 침식이 일어나 산지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슬산은 암괴류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 중 달성 비슬산 암괴류는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암괴류(岩塊流)는 큰 자갈 또는 바위 크기의 암석 덩어리들이 무리지어 산 사면이나 골짜기에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하는데, 이를 ‘너덜겅’, ‘암류’, ‘암석폭포’라고도 합니다. 

 

 비슬산의 암괴류는 중생대 마지막 지질시대인 쥐라기가 끝나는 1억 5천만년 전부터 6,600만년 전 사이의 백악기 화강암 거석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의 암괴류 길이는 2㎞, 폭 80m, 두께는 5m에 달하고 암괴들의 직경은 약 1∼2m, 사면의 경사는 15° 정도로 국내에 분포하는 암괴류 중 그 규모가 가장 큽니다.

 

 비슬산에는 유가사(瑜伽寺) ·소재사(消災寺) ·용연사(龍淵寺) ·용문사(龍門寺) ·임휴사(臨休寺) ·용천사(湧泉寺) ·대견사(大見寺) 등 많은 산사가 산재해있습니다. 이들 중 914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한 옥포 용연사 경내 적멸보궁은 보물 제539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견사에는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2호인 삼층석탑이 유명하며, 유가사는 절에서 모시는 산신인 정성천왕(精聖天王)이 가섭불에게 “내 산에서 1천 명이 출가하기를 기다려 남은 업을 받을 것”이라고 발원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유가사 위쪽에 도성암(道成巖)이 있는데, 삼국유사에 도성이라는 승려가 이 암자 위쪽 동굴에 살면서 10리 떨어진 남쪽 고개에 살던 관기(觀機)라는 승려와 서로 오갔으며, 어느 한쪽에서 상대방에게 찾아갈 마음이 생기면 그 상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산의 모든 나무들이 그 방향으로 구부러졌다고 전합니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이 795년전 스님이 22세때인 1227년 고려 제23대 고종 14년에 승과인 상상과에 선불장으로 장원급제 한 후 이곳 비슬산 대견사에 초임주지로 임명받아 22년간 기거했다고 전합니다.

 

 오늘은 대구의 조산인 비슬산과 비슬산에 있는 산사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