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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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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스님 시사칼럼] 대도는 문이 없다(大道無門)

정민지 2022-02-23 09:20:36

안녕하십니까? 대구 보현암 주지 선진(善眞)입니다.

 

‣ 오늘은 대도(大道)는 문이 없다(大道無門) 라는 제목으로 마음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도(大道)는 인도, 차도라고 하는 물리적인 길이 아니고, 윤리적인 뜻의 도리도 아닌, 본체가 광대무변해서 스스로 원만하게 이미 구족 되어 있으므로, 일체 존재와 모든 현상이 의지해 있는 근원으로 가없는 허공보다 넓어서 본래로 부터 문이 없습니다.

 

‘이것’은 텅 빔으로 고요하여, 미묘하고 심연해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이름과 모양도 지을 수도 없으나 굳이 이름 하여 대도(大道)라 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 근원자리에 있고, 잠시도 이 자리를 떠난 적도 없고, 떠날 수도 없고, 항상 존재하는 지금 여기에 어디를 가든 그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송나라 무문혜개(無門慧開)대사가 수행의 이치를 담은 화두를 모은 책 무문관(無門關)에서 ‘큰 길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 길이 천이로다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에 홀로 걸으리라’고 했습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의 좌우명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합니다. 경계 없는 열린 마음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과 옳은 길로 더 높은 것이 없는, 대도(大道)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정치지도자가 문 없는 대도(大道)인 불이중도(不二中道)로 회통하지 않는다면, 무위자연이 아닌 인위(人爲)와 유위(有爲)로 온갖 불신과 불의를 낳아 네편 내편으로 갈라치기하여, 난장판으로 나라를 시끄럽고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파리떼 무리들이 주위에 우글거리게 될 것입니다.

 

신심명(信心銘)에 이르기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고,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조작하지 말고, 억지 부리지 않고, 판단 의도만 멈추면 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문(門)이 없는데, 애써 다시 두드리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흐르게 내버려 두면, 파도가 물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이대로 온전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성품의 바다에는 스스로 여여 한데 문을 두드린다는 것 또한 유위(有爲) 조작(造作)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안의 욕망과 편견과 망상의 숲에 가려 비 본래적인 ‘나’를 나 자신이라 착각하고, 일체 존재의 근원, 본래 모습인 대도(大道)를 잃어버리고, 지금 있는 이대로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지 못할 것입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마음은, 빙산과 같아서 전체의 7분의 1은 물위를 떠다닌다고 합니다. 기름진 부와 명예를 많이 가질수록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여 대도(大道)를 깨닫지 못하면 에고라는 자아의 존재방식이라는 삶의 부조화로 존재의 불만족 상태로 부유(浮遊) 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 감정, 오감은 계속 변하지만, 계속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대도(大道)입니다. 대도(大道)에는 본래 문이 없으니, 종교, 계층, 이념, 배경, 성별, 지역, 자타가 하나임으로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인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사회 간 투쟁의 역사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 열린사회로 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깨어있는 의식이 열린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우주적 생명과 나는 동체(同體)이므로, 대도(大道)의 본체 또한 맑고 깊고 넓어서 경계(境界)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만물을 길러내고 오고 가고 길, 삼라만상의 이치를 왕래하는 대도(大道)을 성취하여, 내안에서 활짝 열린 꽃으로 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