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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대구 팔공산 동봉 약사여래좌상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대구 팔공산 동봉 약사여래좌상

정민지 2022-02-11 09:16:00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안녕하십니까.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입니다. 

 

오늘은 대구 팔공산 비로봉 약사마애여래입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산꼭대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마애불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시선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며 평행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곧 마애불 조성 당시 발판을 세우고 올라간 석공들의 눈높이와 부처님의 눈높이가 마주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대개 참배객들이 올려다 봐야하는 마애불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여간해서 드문 일입니다. 그것은 조성 당시 먼 길 마다 않고 자신을 찾아 참배 온 대중들을 좀 더 자신 앞으로 다가들게 만들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함인 듯 합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인 팔공산 비로봉 마애약사여래좌상은 팔공산 동봉의 마애석불입상에서 서쪽에 솟아 있는 비로봉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마애불상은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 그리고 불꽃무늬의 거신광(擧身光)이 함께 갖추어진 완전한 불상입니다.  불상의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큼직한 육계가 높게 솟아 있고, 얼굴은 알맞게 살이 쪄 있으며 두 눈은 반쯤 떴고 미간에 백호(白毫)는 없습니다. 코는 오뚝하며 인중은 뚜렷하고 입은 좀 작게 표현되었으며, 엷은 미소를 띄고 있습니다. 두 귀는 어깨까지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합니다.  법의는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왼쪽 어깨 위에서 반전되어 뒤로 넘어가는 옷깃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편단우견을 한 불좌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외장(外掌)한 채 곧게 내려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놓았고, 손가락 마디마디의 표현이 뚜렷합니다. 손목에도 2조의 음각선이 짙게 그어져 있고, 팔찌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손목 마디를 표현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왼손은 배 앞에서 약호를 들고 있으며 손가락이 유난히 길게 표현되었습니다. 머리에는 큼직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둘레에는 테두리선을 돌려놓고 다시 그 바깥으로 선을 돌린 후 그 사이에 덩굴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두광과 신광 주위에는 대좌에서 두광 정상까지 불꽃무늬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대좌는 화려한 연화대좌인데, 무릎 밑의 단판 앙련은 이중으로 겹쳐져 있고 그 밑으로 복련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연화좌 밑으로 목을 길게 빼고 대좌를 받치고 있는 두 마리 용의 형상입니다. 두 마리의 용은 서로의 몸을 꼬아서 대좌를 떠받들고 입은 딱 벌리고 눈은 금방이라도 승천 할 듯이 부리부리합니다. 이처럼 불상 대좌에 용두를 조각한 것은 희귀한 예입니다. 이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조각이 우수하고 구도도 안정감이 있지만, 평면적인 신체의 구성이나 화려한 장식성으로 미루어 조성 시기는 1200년 전인 9세기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됩니다.

 

 해발 1193m에 위치한 대구 팔공산 비로봉 마애약사여래좌상은 해발 1155m에 위치한 동봉의 부처님보다 좀 더 이른 시기인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대구의 명산 팔공산 동봉의 천년 마애약사여래불에 참배하기 위해 오르시는 불자님들을 위해 조속한 대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혹시나 참배길에 낙상하여 다칠세라 산 아래서 참배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 이럴 때 절실히 요구됩니다. 관계전문가들과 팔공산록 사찰 스님들의 묘안이 하루속히 사부대중들을 위해 그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대구 팔공산 비로봉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 대구한의대 한문화건축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22년 2월 11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