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칼럼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상세보기

[최영식교수 아침칼럼]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정민지 2021-10-22 15:50:31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위원 최영식입니다. 

오늘은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조사라고도 불리는 거조암은 지금으로부터 1283년 전인 738년에 본사인 영천 은해사보다 먼저 지어진 절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이 국보 제14호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을 원래 명칭인 '영천 거조사 영산전'으로 문화재명을 변경했습니다.

거조사 영산전은 1375년 고려 제32대 우왕 원년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조선 초기에 중수되면서 고려 말 · 조선 초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 건물입니다.

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에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물로, 안동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예산 수덕사 대웅전 그리고 강릉 객사 외삼문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심포양식의 고려시대 목조건축입니다.

영산전 내부에는 526체의 나한들이 결집해 계십니다. 

어떤 분은 즐겁고, 어떤 분은 심각하며, 어떤 분은 깊은 사유에 젖어. 마치 인생의 모든 표정과 감정을 결집해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마다의 표정에는 생로병사의 애환과 깊은 탄식, 놀라움, 기쁨, 슬픔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눈빛이 살아 있는,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영산전은 불규칙한 장대석으로 축조된 기단 위에 선 길쭉한 건물로, 두 개의 내부 고주와 그 앞뒤 외부 평주에는 뚜렷한 고려시대 배흘림이 남아 있습니다. 

내부 고주와 외부 평주는 퇴보로 연결되어 평주 위의 첨차 소로로 짜여진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심포 건물입니다.

내부에 우뚝 솟은 고주상부에는 주두를 포작으로 대들보를 받아 동자주 위에 중도리를 받치고 중도리에 종보를 걸쳐 놓았습니다. 

이 종보 중앙에 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종도리 좌우로 사람 인(人)자 모양의 솟을합장을 세워 대공위의 종도리와 동자주 위의 중도리를 구르지 못하게 잡아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솟을합장이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건물 내부 천장은 위로 쳐다보면 서까래와 천장가구가 노출되어 있는 연등천장으로 짜여진 전형적인 주심포건축 양식의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유구입니다. 

특히 거조사 영산전의 바깥기둥인 평주 위의 공포에서 첨차 밑에 겹쳐 다시 헛첨차로 받쳐 키가 큰 첨차처럼 되어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처마길이를 길게 내기 위하여 건물 외부로 튀어나온 출목첨차의 길이 또한 길게 내기 위하여 이를 보강하기 위한 특이한 처리방법이기도 합니다.

또, 종보 중앙에 놓여 일종의 포대공으로 된 마룻대공은 높직한 사다리꼴 위에 이중으로 된 포작이 있는데, 아래쪽 포작은 보머리를 거꾸로 한 것 같은 형태로 되었고 위쪽 포작은 역사다리꼴로 만들어 다른 건물에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16년 전 2005년 강원도 양양 동해안에 접해 있는 관동8경 중의 하나인 낙산사가 산불로 소실되었을 때 문화재청에서 전국의 산사에 화재예방 점검을 나간적이 있었는데, 이때 거조사 영산전에 갔을 때 주지스님이 소방호스로 직접 화재진압 훈련을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문화재인 영산전 내부에 500나한을 찾은 참배객들을 위하여 건물바닥에 비닐장판을 깔아놓은 것이 실내환기가 되지않아 천년고찰의 목조기둥 하부가 부식될 것 같아 이를 제거해줄 것을 당부했는데 그후 잘 이행 되었는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영천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아침세상 아침칼럼

■ 대구한의대 한문화연구소 최영식 교수

■ 방송: BBS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21년 10월 22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