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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두년 부회장 "처음도 역사 회복, 끝도 역사 회복...역사를 잃으면 땅도 빼앗길 것" 상세보기

김두년 부회장 "처음도 역사 회복, 끝도 역사 회복...역사를 잃으면 땅도 빼앗길 것"

김종렬 2023-05-19 13:38:51

경북 예천 대심리 고분, 가야사 복원에 도움...일제 식민사관 극복 알맹이, 가야사 복원·함창고녕가야 복원

 

김두년 예천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부회장이 BBS 대구불교방송 시사프로그램 '라디오 아침세상' 파워인터뷰에 출연해 동학, 가야사, 개심리 고분군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출연 : 김두년 예천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부회장

■ 방송 :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23년 5월 19일, 대구 FM 94.5Mhz·안동 FM 97.7Mhz·포항 105.5Mhz)

■ 진행 : 김종렬 기자

 

▷ 앵커멘트 : 멈추지 않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그릇된 친일 역사인식에 대한 경종으로 읽혀지고 있는데요. 우리 고대사 중 일본의 제국주의 마수가 가장 많이 뻗혀있는 것이 ‘가야사’입니다.

해방이 된지 80년이 다 돼가지만 일본의 한반도 침략 명분인 임나가야설을 깨뜨릴 수 있는 고녕가야 대한 진실은 친일 강단사학계를 중심으로 외면 받고 있습니다.

최근 낙동강 물길을 따라 번성했던 '가야'의 영역이 경북 상주, 문경, 예천 일대까지 이르렀다는 역사적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역사바로잡기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요.

파워인터뷰, 오늘은 예천지역에서 교육·문예운동과 역사바로세우기 활동을 하고 계시는 예천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김두년 부회장을 김종렬 기자가 만나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 김종렬 : 네, 파워인터뷰, 고향 예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40여 년간 교단을 지켜오셨고, 지역의 교육·문예·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펼치시고 계신 분을 찾아 왔습니다. 김두년 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회장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부회장님?

▶ 김두년 부회장 : 네~~ BBS 애청자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 김종렬 : 많은 사람들이 동학(東學)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130년 전 민중혁명이고, 근현대사의 출발점인데도 말입니다. 동학에 대해서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네, 1860년에 최재우 선생이 동학을 창시하게 되는데 그 핵심 내용은 시천주(侍天主), 곧 ‘사람은 누구나 내 몸에 하늘을 모셨다’이러한 것이 중심이라고 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人乃天)’ 이렇게 흔히 표현을 합니다.

동학도인들을 중심으로 1894년 호남 지방에서부터 일어나 전국적으로 퍼진 사회개혁 운동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이는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혁명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습니다.

40여년간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쳐온 김두년 부회장은  말의 소리, 지명과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BBS 불교방송 김종렬 기자

▷ 김종렬 : 동학은 경상도 경주 땅에서 앞에서도 말씀 하셨듯이 수운 최재우 선생이 창시하고 해월 최시형 선생으로 이어졌고,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만 하더라도 동학은 참 낯선 사상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상이 무엇이기에 세상을 그렇게 요동치게 했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시천주(侍天主)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내 몸의 하늘을 모시고 있다 이런 뜻이고, 인내천(人乃天)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 하는 그런 표현인데...

이거는 한마디로 평등으로 표현됩니다.

당시로 올라가면 양반과 상민, 천민 이렇게 참 신분 차별이 심했는데, 평등을 주장하니까 지배 계급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위기감을 아마 느꼈을 것입니다.

 

▷ 김종렬 : 앞에서 동학이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꽃을 피웠다 이런 말씀드렸는데, 경상도 일대에도 동학혁명의 상흔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천지역이 영남 최대의 격전지였다고 들었는데요. 일본군의 개입까지 있었다는데,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당시 동학농민혁명 활동 상황은 전국적으로 불길처럼 일어난 도도한 물결이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일본군의 참전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보복되고 말살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예천은 보수 측에서 낸 ‘척사록’이라는 책이 있고, 동학 쪽에 가담한 쪽에서 나온 비록 좀 부족하지만 ‘학초전’이라는 자료가 있어서 당시의 전모를 대략 파악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갑오년 음력 8월 28일 예천의 서정자(西亭子)들에서 전투가 있었는데 쌍방 5천 명 정도가 참전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것은 흔히 영남에서 일어난 전투로 최대의 전투로 이게 알려져 있습니다.

 

▷ 김종렬 : 서정자들 하는 거는 들녘을 말씀하시는 거죠?

▶ 김두년 부회장 : 네

김두년 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회장이 130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혁명 동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종렬 : 130년 전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출발점인 동학사상, 갑오경장의 제도개혁과 맥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도 엄청난 탄압이 이어졌고 토벌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또 동학이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당시 동학농민혁명 활동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가세로 철저히 패배했지만, 근대국가로 가는 출발점인 ‘갑오개혁(甲午改革’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렇게 문서상으로는 ‘폐정개혁(弊政改革)’의 요구를 받아냈지만 기득권 세력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외세를 끌어들여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진압했습니다. 결국 나라는 폐망했습니다.

 

▷ 김종렬 : 화제를 좀 바꿔 보겠습니다. 예천과 문경은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마한 즉 백제의 땅, 그리고 변한 즉 가야의 땅이었다는 역사적 흔적들이 지표면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특히 부회장님께서는 마한의 주근(周勤) 장군과 당시 산성(山城)에 주목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먼저 가야 이야기부터 꺼내겠습니다. 최근에 가야사를 복원하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광복 후 80년이 되도록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알맹이가 가야사 복원이고 함창 고녕가야 복원일 것입니다.

삼국사기 등 여러 사서에 명백히 나오는 함창 고녕가야를 신민사학에서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예천에서 재발견된 대심리 거대 고분들도 가야의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가야사 복원에도 도움이 안 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저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쪽에 나오는 마한(馬韓) 멸망 내용을 추적한 결과 여기 나오는 원산성(圓山城), 우곡성 등의 산성들이 당시 예천에 있었던 성(城)임을 밝혀냈고, 이것을 문경학술대회에도 보고한 바가 있습니다.

예천 원산성 성터. 봉천사 주지 지정스님 제공
지명의 소리를 쫓아  산성의 위치를 밣히고 있는 김두년 부회장은 예천의 역사가 신라에 머물지 않고 마한에까지 이른다며 예천의 역사를 새롭게 세울 때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 김종렬 : 앞에서 말씀하신 성(城)들이 현재 지명(地名)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아는데요. 간략하게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삼국사기에 마지막까지 백제에 항거한 성으로 원산성과 금현성이 나오는데... 이것을 이제 원산성은 (예천) 용궁의 원산성이 맞고, 금현성은 문경의 마성에 있는 고모산성이 그 성이다 하고 제가 소리를 쫓아서 밝혔습니다. 지명의 소리를 쫓아서

또한 그 뒤에 그 우곡성은 마한의 장수 주은이 최후를 맞이한 성인데 이것은 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은풍현 상을곡성임을 밝혔습니다.

 

▷ 김종렬 : 지명의 소리를 쫓아 산성의 현재 위치를 이렇게 밝히셨다는 이런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현재 예천지역에서는 주근 장군을 기리는 제례 행사, 전설 등이 이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역민과 예천군에 하시고 싶은 말씀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예천읍에는 뒷산이 흑응산인데 읍의 예천군의 진산입니다.

그 성에 장군당이 있는데 여기에는 신기하게도 주근(周勤) 장군을 모신 사당이에요. 거기서 음력 4월 15일에 해마다 주근 장군 제를 올리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현재의 민간전승에서도 확인된 것입니다.

대심리 고분군이 가야의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서도 예천의 역사가 신라에 머물지 않고 마한에까지 이르므로 자랑스러운 역사 도시 예천을 새롭게 세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민간이 힘을 모아 적극 나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천 문경일대 훼손된 고분.  봉천사 주지 지정스님 제공
예천읍 대심리 497번지 일원, 예천군 신청사 뒷편 동산에서 발견된 원삼국시대 고분군 유적

▷ 김종렬 : 앞에서도 예천 대심리 거대 고분군에 대해서 말씀을 주셨는데요. 2020년인 거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그럼 예천지역 고분군이 갖는 의미는 어떻게 보십니까?

▶ 김두년 부회장 : 어느 시기인지는 왈가왈부가 있습니다마는 등산길에 있는 고분군이기 때문에 그 고분을 볼 때마다 우리 역사의 황폐화된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발굴 결과를 두고도 가야냐 신라냐 로 갈라지고 있고요. 그런데 다만 조사 결과에 나오는 그 시대의 추정을 1세기에서 5세기로 되는 유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가야의 시기하고 일치하는 그런 시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조사한 내용에서도 산봉우리 형식의 고분이다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가야의 고분의 형태와 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 김종렬 : 부회장님, 파괴된 유적지, 도굴된 유물들을 볼 때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일본이 짜놓은 역사의 틀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역 차원에서의 역사회복운동이랄까요. 뭔가 일어나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두년 부회장 : 기록과 유물이 버젓이 있는 가야의 역사가 왜곡되고 무시되고 있습니다.

역사 회복 운동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역에서도 이제 그것을 고민해야 될 것 같고 역사를 잃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 김종렬 : 원삼국시대, 삼국시대의 역사가 혼재한 곳은 예천뿐만 아니라 인근 문경과 상주까지 이어지고 있고, 특히 상주 함창과 문경 일대 가야사 복원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한데요. 최근 상주함창문경 고녕가야 학술대회가 문경에서 열렸지 않습니까. 주요 핵심은 무엇이며, 또 반응은 어땠습니까?

▶ 김두년 부회장 : 학술대회의 학문적 깊이와 가야사 회복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가야사를 포함한 역사 왜곡과 관련된 다섯 사람의 발표가 있었는데, 특히 춘천에서 온 중도유적보존에 대한 발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고조선을 신화가 아닌 실체로 인식하려는 흐름이 감지되었습니다.

김두년 부회장은 외세를 끌어들여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진압했다 끝내 나라의 패망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로 날조된 가야사를 회복하지 못하면 다시 과거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종렬 : 역사학계가 가야사를 서술할 때 논문 등에서 우리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 역사서를 배제하고 일본서기를 그 근거로 삼는 이유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특히 가야사의 강역, 지명에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 김두년 부회장 : 저도 그 원인은 뭐 잘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서를 중심으로 하고 다른 나라의 책은 참고로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특히 일제가 조선 침략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한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꺼내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 김종렬 : 시간이 참 짧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바라시는 소원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인터뷰 마무리 하겠습니다?

▶ 김두년 부회장 : 처음도 역사 회복이고 끝도 역사 회복입니다. 중국이 추구하는 동북공정이 확산될 경우에 우리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잃게 됩니다. 이는 유사시 북한 땅을 빼앗길 근거가 됩니다.

임나일본부설로 날조된 가야사를 회복하지 못하고 일제 식민사관을 깨지 못한다면 일본이 다시 부산항으로 김해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결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합니다.

앞으로 제가 예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에 가담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유적에 대한 기념물 설치가 아직 미비해서 진행 중에 있고, 더 크게 보면 지역 사람들에게 이거 알리는 작업을 해야 되는데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과제로 삼고 있고요. 그다음에 그 대심리 고분이나 그것이 아마 저의 판단으로는 가야의 고분임이 확실하고, 또 삼국사기에 나오는 주근 장군과 마한에 얽힌 이야기도 저 나름대로 그것을 밝혔습니다마는 이것을 객관적으로 밝혀서 예천의 역사를 신라에서 훨씬 더 끌어올려서 굉장히 역사도시로서, 역사의 고장으로서의 예천을 세우는 데 주민들과 함께 노력해야 된다고 이래...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김종렬 : 말씀 듣다보니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겠다는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회장님 앞으로도 많은 노력 해주시길 부탁드리고요. 바쁘신데 오늘 인터뷰 대단히 감사합니다.

▶ 김두년 부회장 : 네, 대단히 고맙습니다.

▷ 김종렬 : 네, 파워인터뷰 지금까지 예천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김두년 부회장님을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