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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산 김대원 화백 “중국 그림은 '사이다', 일본은 '쥬스', 한국화는 '숭늉” 상세보기

창산 김대원 화백 “중국 그림은 '사이다', 일본은 '쥬스', 한국화는 '숭늉”

김종렬 2022-09-16 09:05:43

"도산·하회·무휼구곡 등 경북의 구곡을 보여줄 기회 만들 것"
안동문화예술회관에서 누정(樓亭) 100점 공개 '특별전' 열어

 

한국화의 대표급 작가인 창산 김대원 화백은 중국과 일본, 한국 수목화의 특징과 관련해 중국 그림이 '사이다'라면 일본 그림은 '쥬스', 한국화는 '숭늉'이라고 특징 지었다. BBS불교방송 김종렬기자

■ 출연 : 창산 김대원 화백

■ 방송 :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22년 9월 16일, 대구 FM 94.5Mhz·안동 FM 97.7Mhz·포항 105.5Mhz)

■ 진행 : 김종렬 기자

 

▷ 앵커멘트 : 과거 미술관이 소수 상위층의 전유물이었다면 최근에는 보통 사람들도 흥미롭게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많은 미술관들이 세워지고 문을 활짝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도 다양한 미술관이 문을 열고 지역민을 위한 문화공간이 되고 있는데요.

파워인터뷰, 오늘은 3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친 후 고향 안동으로 내려와 미술관을 운영하는 한국화가 창산(蒼山) 김대원 화백을 김종렬 기자가 만나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 김종렬 : 네, 파워인터뷰, 오늘은 소중한 분을 찾아 왔습니다. 동양화, 한국화 실경산수에 관한 한 대표 급 작가시며 안동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창산 김대원 선생님 이십니다. 이 자리에 나와 계시는데요. 안녕하십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예, 감사합니다.

 

▷ 김종렬 : 선생님, 워낙 이력이 많으시니 어떻게 호칭을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현재 김대원미술관을 운영하시고, 33년간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하셨고, 한국화의 대표 급 작가시며 화백이신데, 어떻게 부르는 게 좋겠습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대표급 작가라고 해주시니까 제가 기분은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수 생활을 오래 해서 저를 예전부터 아시던 분들은 교수라는 명칭을 많이 쓰시고 또 근래 저를 처음 본 분들은 제가 뭐 미술관 명함을 드리니까 관장님 뭐 이렇게도 하는데 사실 저는 뭐 화가니까 지금은 교수도 아니고 그냥 창산이라고 불러주면 저는 좋을 것 같습니다.

안동시 남선면 신평길 113-3번지에 터를 잡고 있는 김대원미술관. BBS불교방송 김종렬기자

▷ 김종렬 : 창산 선생님 저도 입에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아호를 보니 조금 전에 말한 창산(蒼汕), 경운재주인(耕韻齋主人), 소남재주인(素南齋主人), 푸르뫼 이렇게 불리시고 계신데요. 이 다양한 아호(雅號)는 어떻게 붙여져 불리게 되셨으며, 의미는 무엇입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원래 이제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아들이 태어나면 자를 지어줬듯이 서화 예술 묵객이라고 그러죠. 묵객들한테는 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호가 100개도 넘는 그런 분들도 있어요.

이제 동양화를 하다 보니까 호가 이제 필요할 것 같아서 제가 창산이라는 호를... 짓게 된 연유는 그 앞에 창자가 풀릴 창(蒼)자인데 제가 존경하는 은사님 호가 창자로 시작해요. 창운 이열모 선생님이라고 지금은 이제 고인이 되셨죠. 그리고 뒤에 산(汕)자는 심산 노수현 선생님 그림을 처음. 그림을 살 때 굉장히 존경하고 제가 아주 흠모했던 그런 분입니다. 그분 한자를 땄죠.

그리고 따고서 제가 뒤늦게 한문 공부를 하고 보니까 그 산자가 단순한 산자가 아니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심지어는 그 일중 김충현 선생님께서 제 그 산자를 보더니 이 산자 자네가 다 아닌가 이래서 그래서 그걸 조선이름산이라고 하네 우리나라 한 면이 이렇게 반도로 이렇게 돼서 삼면이 바다니까 이제 조선을 뜻하네 뭐 이런 식으로 해서 나중에 찾아보니까 그게 이제 물고기 자맥질 할 산이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또 공교롭게도 저희 어머니가 저를 놓을 때 태몽을... 마당에 물이 꽉 찼는데 잉어가 이렇게 노는 거를 꾸었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기가 막히다 싶어서 이제 그걸 썼죠.교수도 30대 초반에 됐는데 그 호를 일찍 썼습니다. 썼는데 금방 지게 내가 지어서 혼자 쓰기는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선배님들하고 또 우리 은사님한테 여쭤봤죠. 제 호가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이렇게 쓰겠습니다. 하니까 그거 좋다. 그런 시작이 그렇게 됐죠.

그리고 그 소남재(素南齋)라는 것은 저희 집 당호인데 뭐 옛 선비들 보면 거처하던 방이 있고 이런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당호를 이제 다 하나씩 이제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소남재라는 것은 논어에 보면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얘기가 나와요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이 갖추어진 뒤에 하는 것이다. 이걸 이제 일반 채색과 하는 분들은 또 자기들 용도에 맞춰서 그림을 그릴 때는 흰색을 칠한 다음에 그린다 이렇게 이제 해석하는 분도 있어요.

여기도 보시다시피 제가 소 그림이 좀 있죠. 소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소는 또 부지런해요. 그래서 경자라는 의미가 부지런한 거고 밭을 일군다 뭐 이런 뜻인데 노력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운자라는 것은 상당히 많이 쓰죠. 그 운자가 우리가 말하는 운동하는 운자가 아니고 운치라는 운자입니다. 그러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운이고 또 신운입니다. 좋은 그림을 부지런히 그리는 집이다 해가지고 경운재(耕韻齋)라고 제가 이름을 지었습니다. 푸르뫼는 창산을 이제 우리 한글호로 쓰면 푸른 산이죠.

창산 김대원 화백은 요즘의 그림들은 서양화와 합성되고 해서 사물의 본질의 추구하는 동양화도 어떤 틀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 김종렬 : 창산 선생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수도권과 비교하면 조금은 외친 곳이죠. 고향 안동에 김대원미술관을 개관하셨는데, 고향에 터를 잡은 동기는 무엇이며, 또 운영방향, 목표는 어디에 두셨습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제가 여기 고향에 미술관을 짓고 여기서 터를 잡은 이유는 안동의 고색창연한 고가(古家)들이 일단은 첫째 목적입니다. 그런 걸 실컷 그리려고... 또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대도시에서 이러한 공간을 가지고 있기라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힘들죠.

안동의 그 많은 유물을 그리고 싶어요. 문화유산 그리고 경북의 산, 유산을 그리는 게 두 번째 목적이고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사실은 없습니다.

그냥 제 자신이 정말 좋은 그림으로서 훌륭한 그런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으면 뭐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있습니다.

 

▷ 김종렬 : 현재 미술관 전시실에는 전시된 작품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소중하겠지만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을 꼽으신다면, 또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 창산 김대원 화백 : 사실 제가 그림이... 지금 몇 천 점은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간에 한계도 있고 해서 다 못 걸었는데 사실 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저 2층에 있는 ‘해질녘’이라는 그림입니다. 그게 91년도 작품인데 저도 그 그림을 그려놓고 그 당시에 좋은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동양화를 하기 전에 수체화와 유화를 많이 그렸어요. 그래서 그 기질로 한번 그려본 작품입니다. 6m 높이가 2m 되는 대작인데 호수로 따지면 천호가 넘죠. 그런데 그걸 조금 빠른 시간에 그렸습니다. 순식간에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데 조금 제작 시간이 그렇게 오래 안 걸렸어요. 

그랬는데도 그림이 좋고 그래서 91년도에 제가 미술에 관해서 작품 전시를 했을 때 동양화하시는 분들은 그 작품에 대해서 별 반응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조각하시는 선생님들이나 서양화하시는 분들이 야 동양화도 저렇게 그려야 돼 그래갖고 이따 보시겠지만 저 위에 가면 있습니다.

김대원미술관 
창산 김대원 화백은 고향 안동에 미술관을 지은 동기와 관련 안동의 고색창연한 고가, 유물, 문화유산 등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김종렬 : 선생님이 펴내신 논문뿐 아니라 완역서들을 보면, 직업적으로는 예술대학 교수시며 동양화가이신데요. 전통 한학자들도 어려운 중국의 한문원전을 한글로 번역하셨지 않습니까. 그림이론집을 편찬해 내셨는데 그 계기는 무엇이며, 또 한문 공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저는 미술교육과를 나왔기 때문에 서양미술사 미학 뭐 이런 여러 가지를 다 접해봤는데 서양화에 대한 어떤 미술 이론이나 이런 철학들은 거의 뭐 다 알아요. 사람들이 심지어는 뭐 중학생들도 서양화가 어떤 것인지 뭐 이 흐름을 압니다.

인상파에서부터 야수파 해갖고 뭐 쭉 나오는 현대미술까지, 그런데 동양화에는 뭔가 그런 딱 떨어지는 체계적인 이론이 없어요. 그리고 또 물론 이론이 있는 책이 있지만 아주 단편적인 겁니다.

그 당시에 미술 이론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은 거의 다 일본 책을 갖다 놓고 읽어주셨어 그러다 보니까 아주 단편적인 것뿐이죠. 그래서 뭔가 이론이 있을 거다. 해서 보니까 전부 한문이에요. 전부 한문이고... 한문을 공부를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학원 학생들하고 제가 잘 아는 한서대학교 부설 한문연구소가 고전연구소가 있었어요. 동양 고전연구소라는데, 그 선생님이 지금은 뭐 거의 거동도 못하실 정도인데 나이가 백 살쯤 돼가요. 일평 조남권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을 제가 찾아갔죠.

사서부터 시작을 했죠. 대학, 논어, 맹자, 중용까지 쭉 하면서 이제 관심을 가지고 온통 거기에 신경을 쓰니까 조금씩 보여요 보이다가 또 화원 글귀가 나오면 제가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봬요. 뵙고 뭐 이렇게 여쭤 보면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데, 또 그 어른은 한자의 문맥만 해주시지 또 그림에 대해서 조예가 없으시니까 이게 좀 어느 정도 한 오 육년 지나니까 좀 어긋나는 면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분 하시는 말씀이 나도 나이가 들어서 여기 대학 연구소에서 녹을 먹고 있는데 김 교수하고 나하고 책을 하나 씁시다 이렇게 돼요. 번역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시작이 된 겁니다.

창산 김대원 화백이 화폭에 담은 경북의 누정. BBS불교방송 김종렬기자
창산 김대원 화백은 동양화에는 뭔가 딱 떨어지는 체계적인 이론이 없어 한문을 배워가며 중화권의 대표적인 화론 모음집인 '중국역대화론(5권)', '중국고대화론유편(16권) 등을 한글로 번역·편찬하게 됐다고 말했다.

▷ 김종렬 : 창산 선생님께서는 5권의 중국역대화론, 16권의 중국고대화론유편 등 다수의 한본원전 번역 결과물을 내셨는데, 여기에 대한 평가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평가는 대단하죠. 그런데 실질적으로 뭐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거나 그런 거는 전혀 없고 그 책이 이제 워낙 전문서적이 되다. 보니까 연구재단에서 번역서로 지정이 됐어요.

 

▷ 김종렬 : 그동안 대한민국미술대전, 월전미술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시고 20차례 개인전, 300여회의 단체전을 여신 대표적인 수묵화가 이신데요. 청취자들을 위해 동양화(한국화)와 서양화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 ‘서구의 미’와 ‘한국의 미’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시죠?

▶ 창산 김대원 화백 : 아주 좋으신 말씀인데 상당히 어려운 말씀을 질문하시는데... 동양화는 아마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같고요.

이게 이제 무슨 말이냐 하면, 서양화는 그러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느냐 그건 아니고 쉽게 설명을 하면 사과를 하나 그릴 경우에 서양화는 거기에 빛을 비춰서 그림자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입체감을 내는 거죠.

그건 아마 다 생각이 나실 겁니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그려봤는데 근데 동양화라는 것은 그림자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윤곽선과 가운데를 가장 볼록하게 표현해서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거죠. 이제 원 상태는 그렇습니다. 근데 요즘은 이제 그림들이 워낙 이제 서양화와 이렇게 합성되고 해서 동양화나 어떤 틀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이제 변화가 됐는데 근본적인 것은 동양화는 사물의 본질을 중요시하고 서양화는 사물의 본질을 위한 백그라운드나 뭐 이런 걸 좋아하는 거죠.아마 그 미술시간에 조금 관심이 있었던 분들은 바로크 기법이라고 그래가지고 정물화를 그릴 때 앞에 있는 사과와 천을 분명하게 하려면 길을 까맣게 한다 그런 원리가 있습니다. 그게 이제 서구적인 기초적인 서양화의 기법이고 또 동양화는 전혀 그림자가 없는 겁니다. 제가 이제 대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그림 이야기라는 책을 네 번을 번역을 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그 신라 시대 최치원부터 조선시대 아주 후기 화가들 문인들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쭉 뽑아놓은 게 있어요.

제가 새로 번역을 하고 쭉 모아서 읽어보니까. 중국 그림 일본 그림 한국 그림 특징을 제가 얻었어요.

뭐냐 하면 중국 그림은 중국 사람들의 기질과 비슷하게 굉장히 기상이 강한 그런 진취적인 그런 요소들이 있고, 일본 그림은 섬나라니까 좀 따뜻하면서 달콤해요. 근데 우리 그림은 결론으로, 중국 그림이 ‘사이다’ 그 다음에 일본 그림은 ‘쥬스’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림은 ‘숭늉’이에요. 그러니까 왜 숭늉이냐 제가 요즘 그리는 그림은 거의 우리 조선 한지를 씁니다.

여기 저 청송한지 안동한지를 제가 많이 쓰는데 이 한지라는 것이 굉장히 질기고 오래 가는데, 디테일한 맛에서는 못 따라가요.

중국은 아주 예리한 가는 그런 붓으로 만약에 이런 풍경을 그리면 좀 둔탁한 맛이 나요. 우리 거는 그리고 한지가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국 그림은 농담을 내면은 그 농담이 서너 차례가 다 표현이 되는데 우리 그림은 한 톤 가라앉아요. 그림을 안 그려본 분들은 이해가 안 갈 겁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숭늉 맛이야 그 숭늉 맛 아시죠.

김대원미술관에 전시된 수묵화
창산 김대원 화백은 중국 그림은 기상이 강한 그런 진취적인 요소들이 있고, 일본 그림은 섬나라의 특징이 반영된 따뜻하면서 달콤하다고 말했다.

▷ 김종렬 : 창산 선생님께서는 오는 28일부터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전시회를 여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전시 제목과 취지,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 창산 김대원 화백 : 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있는 그런 것들을 제가 저 그림을 많이 그리다 보니까 이 누정 전시를 위해서 그린 게 아니고 누정 그림이 쌓이다 보니까 주변에서 보고 ‘누정전’을 한번 하자 이렇게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은 일단 제가 누정전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을 했으면 일단 유명한 데부터 찾아다녔겠죠. 뭐 국보급이라든가 아니면 뭐 유명한 인물들의 어떤 집을 찾아 다녔겠죠. 근데 저는 화가로서의 본 누정입니다.

그 자연과 누정(樓亭), 정자亭子)가 조화되고 그림으로서 훌륭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죠.

그러다 보니까 한 60점이 이제 60곳의 정자를 그렸죠. 그래서 보는 방향이나 각도가 틀리니까 그게 한 100점이 된 겁니다.

요즘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문화재가 다 수리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정말 좀 그리고 싶은 운치는 별로 없어졌어요.

기와도 반듯반듯하고 자꾸 정리가 돼 있으니까. 근데 저는 나중에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알지만 가능하면은 재탄생시킵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그런 흔적으로 그 기와도 보면 제가 지금 그린 그림들도 보면... 만약에 저 현장을 가서 사진을 찍어서 보시면 전혀 그런 저런 맛이 없을 겁니다. 저는 그걸 재탄생시키는 거죠.

그 정자나 이런 누정을 그리면서 제가 느낀 거는 참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존중했구나. 뭘 훼손시키는 게 없고 바위 위에 정자를 지을 때 밑이 부족하면 돌을 갖다 얹었지 거기 있던 거를 손상시키지 않았더라고... 요즘같이 뭐 이렇게 까내고 하고 이런 게 전혀 없더라고요.

김대원미술관에 전시된 수묵화
창산 김대원 화백은 그동안 화가로서 본 경북의 자연과 누정을 수묵으로 담은 그림 100점을 공개하는 전시회인 '영남의 누정, 그림속으로 들어가다' 특별전을 오는 28일부터 10월 7일까지 안동문화예술회관에서 연다.

▷ 김종렬 : 누정(樓亭), 정자(亭子) 하면 경북이 가장 많잖아요. 이번 전시회는 그럼 영남의 누정 60곳 중 그 곳의 정자 100여점을 전시하신다는 말씀이신데, 대충 어느 곳의 누정인지?

▶ 창산 김대원 화백 : 안동에서 대표적인 것은 고산정 그리고 영덕 옥계죠. 거기가 옥계계곡의 침수정이 풍광하고, 거기를 여러 각도로 그렸고 또 예천에 가면 초간정이 있습니다.

그것도 제가 참 여러 점 그렸어요. 초간정 하고 또 이번에 많이 그린 게 그 방호정, 청송에 있는 방호정 그 아주 기가 막힙니다. 아주 절경이... 그리고 뭐 많죠. 그런데 나중에 이제 도록을 보시면 될 거니까.

▷ 김종렬 : 그러니까 그림 누정 그림이 조금 현대적으로 조금 가까워진 부분들을 다시 자연을 익혀 재탄생시킨 부분들이 많아 졌다는 군요?

▶ 창산 김대원 화백 : 아 그렇죠. 예예~

▷ 김종렬 : 선생님 문화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그 나라 민족의 우위를 다루는 게 아니라 지역성을 다루는 것이다’란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영남의 누정’ 또한 그런 것 같고요. 한국화를 지켜오신 대화백으로서 고향 경북 안동의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한 말씀해주시죠?

▶ 창산 김대원 화백 : 그것도 참 어려운 질문이신데, 제 나름대로 일단 외부적으로는 상당히 보존을 잘 하고, 또 나름대로 이제 어떻게 하면 이 문화재가 오래될까 해서 고택, 민박을 한다든지 뭐 왜냐하면 그것도 이해가 갑니다.

사람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살아야지 그 집이 오래 가지 문을 닫아놓으면 여러 가지로 부패되고 썩어버리는 그런 현상으로 있는데, 거기에서 조금 실망스러운 점도 있을 수도 있고 또 서로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이제 뭐 저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뭐 이런 식으로 또 얘기를 하는 분도 있고,

또 반대로 지원을 해준다고 내 집 내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는데 또 이러한 의견들이 있어요. 그러한 이제 갭(Gap)을 잘 이제 이렇게 조화롭게 형성하는 게 소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되는 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여기 미술관을 지어놓고도 가장 걱정스러운 게 농림 속에 사실 이 농민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게 뭔가를 한번 생각을 해봐요. 그래서 어느 정도 공간이 지어지면 그 농민들을 위한 뭐도 한번 계획을 하고 싶습니다.

창산 김대원 화백은 안동 문화의 방향과 관련해 외부적으로는 상당히 보존을 잘 하고 있지만 지원과 관리에 실망스러운 의견을 내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하고 갭을 조화롭게 형성하는 것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 김종렬 : 시간이 참 짧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 그리고 목표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고, 또 문화수요자들인 대구경북 시도민들에게도 전하시고 싶은 말씀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인터뷰 마무리 하겠습니다?

▶ 김대원 관장 : 아이고~ 저기 뭐 제가 이제 누정을 하다 보니까 사실 50% 정도 밖에 못 그린 것 같아요. 그래서 기왕 누정을 이제 그린 거니까 그 나머지를 최대한 그림이 되는 전혀 안 되는 거를 그릴 수는 없고요.

그림 감이 된다는 그런 누정을 빠뜨린 것을 틈틈히 제가 정리를 할 거고, 또 앞으로 요즘 경북에는 구곡문화가 상당히 활발합니다.

도산구곡, 하회구곡 심지어는 저 성주 김천 사이에 있는 무휼구곡 같은 거... 그거를 가지고 선조들의 얼을 거기에 집어넣는 거죠. 선조들의 얼을 집어넣는 거는 뭐냐 하면, 도산구곡 열 개 구곡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 퇴계 선생님 시가 다 있어요. 그걸 이제 거기에 담으면서 또 이게 아무래도 자연이 세월이 지나가면 훼손이 되지 않습니까.

그 시를 읽으면 옛날의 모습이 있을 수도 있고 물론 뭐 시라는 거는 자연경물을 과장할 수도 있죠. 그러나 최대한 자연을 아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확장을 할 수가 있죠.

화가는 이제 그러한 것들을 해서 제가 이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경북의 구곡을 앞으로 이런 더 기회를 보여줄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너무 지방에 있는 작가분들이 물론 힘들겠죠. 사실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서 생활한다는 게... 그러나 이 좋은 지역, 문경 같은 데는 참 좋지 않습니까. 산수가 이 좋은 지역에서 정말 좋은 그림을 그리면 그려집니다. 그리고 또 자꾸 그리면 좋아집니다. 그래 이렇게 말씀드리고 오늘 긴 시간 감사합니다.

 

▷ 김종렬 : 네, 창산 선생님의 작품을 보니 아름다운 산수화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침체된 한국화의 화풍을 일으켜 세우시고 지역 문화 창달을 위해서도 노력해 주시길 바라고요. 바쁘신데 오늘 인터뷰 대단히 감사합니다.

▶ 창산 김대원 화백 : 네, 고맙습니다.

▷ 김종렬 : 네, 파워인터뷰, 지금까지 한국화가 창산 김대원 화백을 만나봤습니다.